이 한 편의 詩

다 아는 이야기 /박노해

뚜르(Tours) 2018. 12. 27. 06:46

 

 

다 아는 이야기

 

​                                박노해

 

 

바닷가 마을 백사장을 산책하던

젊은 사업가들이 두런거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인데

사람들이 너무 게을러 탈이죠

 

고깃배 옆에 느긋하게 누워서 담배를 물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는 어부들에게

한심하다는 듯 사업가 한 명이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은 다 잡았소"

 

날씨도 좋은데 왜 더 열심히 잡지 않나요?

"열심히 더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벌어야지요, 그래야 모터 달린 배를 사서

더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잖소

그러면 당신은 돈을 모아 큰 배를 두 척, 세 척, 열 척,

선단을 거느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요

 

"그런 다음엔 뭘 하죠?"

우리처럼 비행기를 타고 이렇게 멋진 곳을 찾아

인생을 즐기는 거지요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시집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  

 

출처 : 블로그 '하루 시 한 편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