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화, 첫사랑 -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 출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블로그 '시와 음악이 머무는 곳'>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작교 사랑 /江山 양태문 (0) | 2023.08.22 |
---|---|
때 /김광규 (0) | 2023.08.22 |
하일서경(夏日敍景) /구상 (0) | 2023.08.20 |
버들치 /최서림 (0) | 2023.08.19 |
흙 - 문정희 (0) | 2023.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