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월은 /김영희
컴퓨터 앞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이면지처럼,
냉장고 안에 반쯤 남아있는 오렌지주스처럼,
컵 언저리 묻어있는 립스틱자국처럼,
책장에 순서 없이 꽂혀있는 읽다만 시집처럼,
계단 구석 틈바구니 거미의 집처럼,
목욕탕 앞에 널브러진 축축한 수건처럼,
개수대 안에 담겨있는 밥알 묻은 그릇처럼,
싱크대 앞 얼룩진 슬리퍼처럼,
한 발 늦게 들어오는 현관의 센서처럼,
신발장 아래 한쪽 굽만 닮은 구두처럼,
우산꽂이가 되어 현관 구석에 서있는 항아리처럼,
마당 귀퉁이 쪼그려 앉아 핀 달개비꽃처럼,
칠 벗겨진 대문 틈에 꽂혀있는 룸싸롱 광고지처럼,
이웃집 담 기웃거리는 등나무 덩굴처럼,
적당히 궁금하고 적당히 때 묻어 낡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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