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박시하
젖은 낙엽에서 부드러운 냄새가 난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한 채
누군가의 얼굴을 길게 그렸다
보석처럼 빛나는 젖은 낙엽에서
가느라단 비명처럼
정오의 종소리가 울렸다
당신의 등이 지진처럼 흔들리며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투명해도 되는 걸까 우리는
이렇게 자꾸만 열리는
푸른 문을 많이 갖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낙엽을 밟으면 젖은 발자국
젖은 발자국을 남기며 사라지는 우리에게는
죽은 잎사귀들이 살아간다고 믿어서
그들에게 무게를 지우고
천천히 사라지는 우리에게는
삶이 있을까
그런데도 열리는 문은 무엇일까
저 차갑고 선명한 문은
왜 닫히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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