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을까? /김언
바람이 불고 나무가 생기다가 말았다
생기다가 만 나무들이 자라면서 웃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틀어박혀서 생기다가 만 모양 그대로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심하다. 바람이 세고 바람이 거칠어서
더 자라지는 못하고 웃자라는 것도 잊고
능선을 장식하는데, 장식이랄 것도 없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데
붙어 있는 모양새가 하도 나무 같지 않아서
생기다가 만 것 같고 자라다가 포기한 것 같고
죽다가도 포기한 것같이 말라붙어 있는 모양새가
자꾸 눈길을 끄는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능선을 따라서 눈길을 떼고 싶어도 자꾸자꾸 나타나는데
그 모양새가 하도 기가 막혀서 나무라고 부르려다가 말았다.
질려버려서 나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계간 《시산맥》(202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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