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일에 /박인걸
샛노란 은행잎과
새빨갛게 빛나던 단풍잎이
며칠 사이에 곤두박질치고
살 발라 먹은 고깃뼈처럼 앙상한 가지만
찬 바람에 몸서리친다.
그 푸르던 칠엽수 마로니에 잎과
큼직한 오동나무 잎 뚝뚝 떨어지니
황혼길에 접어든 나그네
텅 빈 가슴 헌옷처럼 찢어진다.
몇해 전만 해도 이런 날에는
막연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가을빛 공원을 뒤덮을 때면
앞집 소녀가 한없이 그리웠었다.
늦가을 분위기에 휩싸일 때면
고개 내미는 진한 추억들이
내 손을 이끌고 옛 마을 앞에 세웠는데
이제는 그리움도 시들어진 마음에
찬비만 하염없이 내린다.
검은 구름은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고
낯선 사람들 총총(悤悤)히 사라지듯
늙는 얼굴 허망한 인생
올해 11월은 빈집만큼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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