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11월 말일에 /박인걸

뚜르(Tours) 2024. 11. 30. 07:39

 

 

11월 말일에   /박인걸

 

 

샛노란 은행잎과

새빨갛게 빛나던 단풍잎이

며칠 사이에 곤두박질치고

살 발라 먹은 고깃뼈처럼 앙상한 가지만

찬 바람에 몸서리친다.

그 푸르던 칠엽수 마로니에 잎과

큼직한 오동나무 잎 뚝뚝 떨어지니

황혼길에 접어든 나그네

텅 빈 가슴 헌옷처럼 찢어진다.

몇해 전만 해도 이런 날에는

막연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가을빛 공원을 뒤덮을 때면

앞집 소녀가 한없이 그리웠었다.

늦가을 분위기에 휩싸일 때면

고개 내미는 진한 추억들이

내 손을 이끌고 옛 마을 앞에 세웠는데

이제는 그리움도 시들어진 마음에

찬비만 하염없이 내린다.

검은 구름은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고

낯선 사람들 총총(悤悤)히 사라지듯

늙는 얼굴 허망한 인생

올해 11월은 빈집만큼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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