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지나가는 것 /신달자

뚜르(Tours) 2025. 1. 30. 22:16

 

 

지나가는 것  /신달자

한 아주머니가 긴 복도 저쪽에서

긴 막대 걸레를 쑥쑥 밀고 온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받고 입으로 껌을 딱딱 씹으며

발로는 이것저것 장애물을 치우며 가끔 웃고 때로는 무표정하게

무조건 밀고 들어오는 탱크처럼 그 막대 걸레 아줌마 먼지를 털고

쓰레기를 밀고 밀고 밀고 내 어깨 옆을 쑤욱 지나가는 그 순간

개울 지나가고 강 지나가고 바다 지나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지나가고

한 무리 새 떼가 지나가고 한 무리 태풍이 지나가고

탄생과 죽음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가고

화들짝 꽃들이 와르르 피고 주르룩 꽃들이 떨어지며 지나가고

걸레 아래서 무참히 지워지는 더러운 무늬들

무작위로 쳐들어오는 광고지 같은 소식들 뭉개지고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어 더듬거리는 입술 터지고

거기 내가 잃어버린 시계 초침 하나 어디론가 쓸려가고

귀 멍멍히 아스라이 빛 부스러기와 그늘이 멀어지고

쑤욱 쑥 밀고 내 어깨 옆을 무심히 지나가는

저 흰 구름들.

​시집『살 흐르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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