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반경 / 김나영
사람 관계가 고산준령이다 첩첩산중이다
피로 나눈 관계든 정으로 맺은 관계든
이해의 협곡과 타산의 습곡 사이
아슬아슬 곤두서는 감정의 도그마
마주 보고 웃고 있어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만큼 고단하고 피곤한 산이 없다
사람을 피해 나 홀로 산행 길에 오른다
비 온 직후 산길 초입에 인적이 뜸하다
사람들을 벗어나자 피곤이 푹 익은 감자 껍질처럼 벗겨진다
이 무주공산 어디쯤 야트막한 처소 한 채 짓고
진달래며 다람쥐랑 이웃하고 고요를 들이고 살면
나는 사람들 그리워하는 사람이 될까
무인사(無人寺)는 아직도 멀었는데
편해야 할 산행이 슬그머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인간을 피해 온 산행이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킁킁 인간의 자취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때 산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순간
반갑다, 싶은 마음에 백짓장 같은 공포가 덮친다
몇 년 전 이 산 계곡에서 살인 사건도 일어났다는데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 인상착의부터 살피게 되는데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불안하고
사람이 나타나도 불안해지는 산길,
나는 어디서 어디로 도피 중이었을까
발길 되돌려 오던 길 다시 내려간다
인간 비린내가 진동하는 습속
징글징글한 나의 적소를 향하여
- 김나영,『나는 아무렇지도 않다』(천년의시작, 2021)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을 드립니다 /오광수 (0) | 2025.05.01 |
---|---|
떠나는 4월 /운곡 오철수 (0) | 2025.04.30 |
4월의 꽃편지 /향린 박미리 (0) | 2025.04.26 |
봄날은 갔네 / 박남준 (0) | 2025.04.22 |
일단 멈춤 /김형효 (0) | 202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