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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 유즙
17세기 전북에서
태어나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모두 전주 인근의 김제지방에서 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인물은
백석(白石) 유즙(柳楫, 1585~1651)으로 백석 선생은 당시 김제지역의 대표적 유림이었다. 현재 백석 선생의 문집이나 필적에 관한 자료는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백석 선생의 학문과 사상이 후대에 전해져 전북 서예의 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기록은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고 있다.
창강(滄江) 조속
두번째
인물은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88)이다. 창강 선생 역시 김제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학자로서의 면모를 가진 백석 선생과 달리
창강 선생은 서화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 서예의 맥을 진정으로 태동시킨 중요한 인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는데 “붓끝으로 그려내는 글씨와 그림이 절묘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모두
보배로이 간직하고 있다. 선생의 높은 재주로 능히 못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칭송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명(鏡銘)에서 글씨는 마음의
획이며 그림 역시 신통한 것이라 하여 서화의 가치를 천금과 같이 여겼을 정도로 서화에 심취해 있었다. 그의 무욕의 삶과 뛰어난 예술적 자질은
후세의 귀감이 되어 택당 이식은 그의 인품을 ‘깨끗하기는 옥과 같고 곧기는 활시위와 같다’라고 하였고, 그의 재주를 빗대어 ‘삼절을 겸비한
재주는 바로 노숙한 정건(당나라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감잎으로 종이를 대신하였고 시서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이라 일컬어졌다)’이라고 칭송하였다.
백석과 창강은 모두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한 송재 송일중의 스승이 되는데 백석과 창강의 학문과 예술이
송재에게 이어져 전북 서예의 맥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백석과 창강은 전북 서예의 태두로 인정되고 있으며 이 시기가 매우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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