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 1595년, 복사본
중국 명나라 때 예수회 소속 이탈리아 신부인 마태오 리치(Matteo Ricci:利瑪竇)가 1593- 96년에 편찬한 한문으로 된 천주교 교리서이다. 천주실의의 내용은 선조 때 문인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1614)"에 소개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하느님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며, 8편 174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말(明末) 청초(淸初)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총 500여 종에 이르는 서양 학술서적을 다투어 한문으로 번역 출판하는 분위기 속에서 1593~96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1603년에 중국 북경에서 처음 간행된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거듭 출판되었다. 가톨릭 철학과 스콜라 사상의 입장에 선 서사(西士)와, 전통 유학과 불교·도교의 사상을 갖춘 중사(中士)가 토론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동양사회에 대한 천주교 전파가 목적이었으므로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천주교 교리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필요한 경우 불교와 도교 이념도 동원하였으며 중국의 고사(古事)와 성어(成語)를 적절히 이용하였다. 1편은 신의 존재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2편은 불교·도교에 대한 논박과 상제(上帝) 개념 등 천주교 수용의 기반이 되는 유교의 성격에 대한 설명을, 3편은 천국(天國)의 필요성과 식물·동물·인간의 특성을, 4편은 인간 영혼의 신령함과 범신론적 일신론(汎神論的一神論)에 대한 비판을, 5편은 윤회설 등 불교에 대한 비판과 그리스도교의 재계(齋戒)의 성격을, 6편은 죽은 후의 상벌(賞罰)과 지옥·천국·연옥에 대한 설명을, 7편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되는 인간의 본성을, 8편은 천주교 신앙생활과 상통하는 중국 고대의 생활과 천주교에 귀의하여야 할 당위성을 논하였다. 이 책의 일차적인 특징은 불교와 도교는 배척했지만 유교는 태극설(太極說)을 제외하고는 그 의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 천주교 전파의 바탕으로 삼으려 했던 점에 있다. 18세기 중엽 이후 이벽(李檗) 권철신(權哲身) 등을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성립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반대중을 위한 번역본도 많이 필사되었다.
천주실의 한글 번역본, 절두산 박물관
천주실의, 절두산
천주실의, 1868 중간, 카톨릭대박물관
마태오 리치, 천주실의 저자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의 교황령 도시 마체라타에서 13남매의 장남으로 출생. Matteo는 세례명이다. 부친인 요한 리치는 마체라타의 시장을 지냈으며, 후에 주지사의 지위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마테오 리치는 어려서부터 가정교사로부터 배웠으며, 가정교사인 니콜로 벤치베니는 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리치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1571년 (19세) 예수회에 입회하여 로마의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가다. 1582년 (30세) 중국의 마카오에 도착하다.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의 사제 계급인 승려로 어필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고 회색 승복을 착용하고 전도생활을 시작하였다. 1603년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인쇄함. 1610년 5월 초 병상에 눕다. 5월 8, 9일 고해성사를 하다. 5월 10일 종부성사를 받았다. ⑶ 1610년 5월 11일 저녁 7시에 만 57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⑷ 1611년 황제로부터 산랸의 묘지를 하사받았다.
지봉유설(Treatises on Practical Topics), 1614년 이수광 저
이수광의 호는 지봉(芝峰)으로 병조판서를 지냈던 전주 이씨의 희검(希儉)의 외아들이었다. 선조 18년(1585)에 관직에 올라 광해군 때에 물러났으며 사행을 세 차례 했다.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으며 1613년(광해 5년)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낙향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도승지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다 1628년(인조 6년)에 별세했다. 그의 책 『芝峰類設』(지봉유설)은 1614년에 집필되었으며 그 책의 박물적(博物的) 성격은 그의 활동과 학업의 소산이라 하겠다. 그는 조선에 서양에 대하여 처음 문헌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선조 36년, 그가 북경에 갔을 때에 이광정이 가지고 귀국하려던 '구라파국여지도'(歐羅巴國與地圖)를 보았다고 하면서 프랑스(佛良機國)의 무기를 불랑기(佛浪機)라 한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영국(永기利國)에 대하여 기상과 생활, 그리고 군함에 대하여 언급한다. 또한 이어서 이탈리아 신부 마테오리치가 쓴 『天主實義』(천주실의)를 소개하여 천주교의 교리와 교황에 대하여 언급했다. "歐羅巴國亦名大西國有利瑪竇者...天主實義二卷首論天主始制天地主宰安養之道次論人魂不滅大異禽獸次辨輪廻六道之...天堂地獄善惡之報末論人性本善而故秦天主之歲...敎化皇不婚 ..重友論...."(구라파국역명대서국유리마두자...천주실의이권수론천주시제천지주재안양지도차론인혼불멸대이금수차변윤회육도지...천당지옥선악지보말론인성본선이고진천주지세...교화황불혼추..중우론) (유럽국 또는 대서국의 마테오리치라 하는 이는... 천주실의 이권 신론에서 천주는 천지를 만들 때 계셨고 주관하시며 평안을 준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교리를 논하자면 인간의 혼은 불멸하기에 금수와는 판이하게 다르며 윤회의 육도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천당과 지옥은 선과 악을 말세에 보응하며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한 것은 크신 천주의 뜻이라...교황이라 하는 자는 여인을 취하여 결혼하지 않으며...형제를 중히 여기고...) 비록 상세한 언급은 아닐지라도 그의 관점에서 읽은 서학의 내용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믿는 자끼리는 형제라 여기고, 교황은 독신이며, 천주의 창조설과 주재하심, 인간의 영혼설과 당옥설(堂獄設)을 말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天主實義』(천주실의)의 내용을 몇 가지만 간추려 소개했다. 즉 이는 그의 관심이 천주교가 아닌 서양의 문물에 있으며 서학의 일부분으로서만 천주교에 대하여 소개한 것이지 자신의 해석이나 견해를 피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글은 당시의 성리학자들이 경원시하였던 박학(博學)의 방법으로 성리학적 경학관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보아야 한다. 당시의 학문과 문물에 대한 박학적 소개는 현실성과 실천성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실학적 태도의 발효였고 서학과 관련된 실학의 효시라 평가할 수 있다.
교요서론, 1670년 베르비스트(verbiest) 저
천주의 존재, 영혼불멸, 천지창조 등 12개의 기본적인 천주교 교리를 해설한 교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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