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연 마르티노
[2006년 5월 21일에 열린 ‘철야기도회 봉사자 피정’을 통하여 영성생활에 대한 묵상을
정리하였습니다.]
저는 일상적으로 경건하게 주님의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자신은 전
혀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경건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영적으로 살고 싶어 영적
인 일, 하느님의 일을 하지만 자신은 전혀 영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합니다. 마치도 속이
텅 빈 강정 같은 자신의 삶이 허탈해 어쩔 줄 모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수없이 많은
기도를 정해진 시간에 바치고 있지만 항상 불안 초조합니다. 삶이 피곤하게 생각될 때
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고민해봅니다. 아무래도 저는 늘 완벽한 자신을 꿈꾸었
기 때문에 늘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늘 결핍된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늘 뭔가 허전하고 불만족합니다. 저는 아무리 노력해
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결핍으로 인해 스스로를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습
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면의 결핍으로 인해, 허한 영혼의 공간을 견
디지 못해 영성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주 하느님께 청합니다. 빈 공간을 채워달
라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우울증을 걷어
가 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늘 허전합니다.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
다 할지라도 우리의 안테나가 하느님이란 주파수에 맞춰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귀가 하
느님이란 대상을 향해 열려있지 않는다면 실제적으로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못할 가
능성이 큽니다. 신앙생활 역시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라는 말씀에 공감합니
다. 영성생활이 세속적인 생활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규칙들로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것
이 아니며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을 향해, 우리의 인간 동료를 향해, 그리고 우리의 하느
님을 향해 다가가기위해 발돋움하는 작업입니다. 혼돈 속에 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용감
하고 정직하게 우리의 깊은 내면을 향해 다가가도록, 또한 깊은 배려와 관심을 갖고 우리
의 인간 동료들을 향해 다가가며 기도로써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불림을 받고 있다는 것
입니다.
묵상(黙想)
※깊은 내면을 향해(안으로) :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가는 길
① 외로움 :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있으면서도 외톨이, 나 혼자라는 느낌을 갖는 것, 즉 사막
과 같다.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모세의 외로움을 묵상해 봅니다.
[민수 11,4ㄴ-15] 그 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우는 소리를 했다. "아, 고기 좀 먹어 봤으면,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 눈앞에 선한데, 지금 우리
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
만나는 고수풀 씨처럼 생겼고 빛깔은 브델리움 같았다. 백성들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모아
다가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서 빵을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에 튀겨낸
과자 맛이었다. 밤에 이슬이 내리면서 그들이 진을 친 곳에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
백성들이 저희들 천막 문어귀에 끼리끼리 모여서 우는 소리가 모세의 귀에 들렸다.
주님께서 크게 화가 나셨다. 모세는 몹시 걱정되어 주님께 울부짖었다.
"어찌하여 이 종에게 이런 꼴을 보이십니까? 제가 얼마나 당신의 눈 밖에 났으면 이 백성
을 모두 저에게 지워 주시는 겁니까?이 백성이 모두 제 뱃속에서 생겼습니까? 제가 낳기
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이 백성을 품고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
로 가라고 하십니까?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어디에서 이 백성이
다 먹을 만큼 고기를 얻어 주란 말씀입니까? 저에게 먹을 고기를 내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많은 백성을 저 혼자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진정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과히 밉지 않으시거
든 이런 꼴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② 고독 : 인간은 외로운 존재임을 깨달아 혼자 있어도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
는 것, 즉 고독은 사막을 정원으로 만든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통해서 고독(孤獨)한 삶을 사신 분이셨다. 게쎄마니에서 예수님과
함께 깨어있어야 할 사람들은 잠에 떨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에는 제자
들이 모두 도망갔다. 닭만 울었을 따름이다. 또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예수님을 증언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독은 철저했다. 예수님이 메시아란 주장은 이방인의 조소(嘲笑)
거리가 되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 간주(看做)되셨지만, 그러나 이름뿐인 왕이
셨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는 혼자이시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느님 아버지
에게서도 버림받은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침묵 속에서 더해 가는 고독을 맛
보셨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단 한 마디의
짧은 말씀만을 전해 준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그러나 죽음이 이 고독을 채 봉인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되고, 새로운 무리의 제자들이
그분 주위에 생겨난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예수님의 고독이 만든 정원에서 백인대장의 이 독백은 예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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