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피는 계절이면
어릴 적 살았던 시골을 생각합니다.
막내였던 내가
열아홉 큰 형이 죽자
그만 장남이 되어
어린 마음에도
부모님을 부양하며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안고 살았었습니다.
피난살이에
남의 집으로 전전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엔 우리 집도 없었고
어린이의 꿈도 없었습니다.
초가집이지만,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나이든 학생들과 지으셨던 초가집은
처음으로 우리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조그만 집에
목단이랑
작약이랑
넝쿨 장미랑
백일홍을 심으셨습니다.
초가집 담 주위엔
황색,
노랑색,
하얀색,
자줏빛 국화를 심으셨지요.
가을이 되면
저 멀리서도
바람에 실려 온 국화 향기가
그리도 좋았었습니다.
늦 가을엔
햇 찹쌀밥에 누룩을 넣고
여린 국화 잎과
색색의 국화 꽃잎을 넣어
밀주를 만드시던 엄마...
지금은 그 엄마도 가셨고
술 취하시면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같이'를 부르시던
아버지도 가셨고
이제는 짙은 국화 향만
내 기억을 사로잡습니다.
세상은
나그네 길 주막집에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의 짧디 짧은 한숨소리와도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
삭막한 겨울이 다가오겠지요.
from Your Romio
출처 : Romio님의 플래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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