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까. 자의든 타의든 또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 많은 만남 중에는 분명 가슴에 남는 만남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와 연령층의 사람을 만나는 직업 덕에 그동안 일반인들보다는 특별한 사람과의 만남이 많았다. 짧게는 전화 몇 통화로 만남이 끝나는가 하면, 운이 좋을 때에는 마주 앉아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 특히 만나고자 했던 사람과의 만남이라면 짧은 시간일수록 더욱 설레고 흥분된다. 연극 <19 그리고 90>에 이런 장면이 있다. 19세 소년 헤롤드는 80세의 할머니 모드의 생일을 위해 샴페인과 해바라기 꽃을 준비한다. 눈을 감고 즐거워하는 모드에게 헤롤드는 놀라운 선물이 또 있다고 말한다. 그때 모드가 말한다. “난 참 놀라운 걸 좋아해. 그런 건 내 감정을 명주처럼 섬세하고 부드럽게 만든단 말이야.” 나윤선을 만나러 가는 내내 모드의 말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 말보다 직접적이고 서정적인 정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름 붙은 날의 선물보다는 불시에 건네준 선물이 마음을 더 어루만진다.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모 화장품 회사의 유방암 의식 향상 캠페인 ‘핑크 리본’ 행사가 있던 날, 서울 정동에서 나윤선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오늘은 총 3곡을 불러요. 뜻 깊은 행사인 만큼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제게 무대에 오르는 것은 항상 겁나고 떨리는 일이에요. ‘가끔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해요. 재미있죠? 노래하는 사람이 무대를 겁낸다는 것이…. 하지만 그 설렘과 흥분이 좋아요. 살아 있다는 존재감이 전율처럼 온몸으로 느껴지거든요.”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노래로 전달하는 직업 덕에 그 또한 많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재즈는 나윤선과 사람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인 셈이다. 나윤선은 11월에 있을 공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 ‘메종 드 윤선’이라는 공연의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번 무대는 그의 음악적 발자취와 새로운 도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재즈뿐만 아니라 음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가요, 샹송, 팝 등의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대로 꾸밀 예정이다. “제목 그대로 저희 집에 손님들을 초대한 거예요. 격식과 형식은 잠깐 잊고 손님들과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는 그저 편안한 일상처럼 말예요. 제 팬의 대부분은 여성분들이에요. 외국에 자주 나가 공연도 하고 그들의 공연문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저력을 느끼게 돼요. 공연장에 직접 오셔서 같이 좋아해 주시고 반가워해 주시니 너무 기쁘죠. 팬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콘서트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트리오 몽마르트르의 리더인 닐스 란 도키(Niels Lan Doky)가 게스트로 출연해 호흡을 맞추게 된다. 닐스 란 도키는 ‘블루노트’, ‘버브’, |
..‘마일스톤’, ‘콜롬비아’ 등의 세계적인 명문 레이블에서 2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으며, 그의 앨범 <Casa Dolce Casa>(2002)와 <Spain>(2003)은 일본 재즈 전문지 《스윙저널》을 통해서 골든 디스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닐스 란 도키는 내년 초 발매될 나윤선의 가요프로젝트앨범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이 끝나는 대로 나윤선과 함께 음반녹음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Light for the People>(2002)로 한국 뮤지션 최초로 유럽에서 재즈 데뷔앨범을 발표, 활발한 활동으로 현지 주요 방송 리스트에 오르는 등 국제적인 아티스트로 발돋움한 나윤선은 첫 번째 앨범 <Reflet>(2001)으로 데뷔한 뒤 작년까지 4장의 앨범을 선보이며 개성있는 음악 세계로 많은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즈는 삶이에요. 삶이 녹아들어 있어야 해요. 지난 10년간 재즈에 심취해오며 재즈와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부족한 면도 많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하지만, 삶은 공부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어느덧 나윤선은 노래를 부르듯 단어를 골라내고 있었다.
..2005년 그는 ‘나윤선 퀸텟’으로 ‘앙티브-주왕-레-뺑 페스티벌(Antibes Juan-les-Pins Festival)’에서 콩쿠르 대상을 받았다. <So I Am>이 한국인 최초 프랑스 재즈 차트 5위권에 등극했으며, 문화관광부가 주는 ‘2005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문화훈장을 수상하는 등 그의 음악적 성과는 화려한 이력을 통해 빛을 발한다.그는 연예인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팬 카페를 가지고 있다. 재즈계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그, 나윤선이다. ‘신비의 보컬’, ‘천상의 목소리’, ‘한국의 디바’라 불리는 그녀의 10년 전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즈 무대가 아닌 뮤지컬 무대였다.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걸까. 어려서부터 음악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었고, 학교에서는 노래를 곧잘 하는 학생 중 하나였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의 청아한 맑은 음색과 노래에 대한 재능을 숨기지 못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여주인공과 <번데기> 등의 작품에 출연했고 이를 토대로 1994년에는 서울 연극제 대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자신의 역량에 부족함을 느낀 나윤선은 망설임 없이 프랑스로 떠났다. “저는 춤을 못 춰요. 다행히도 저는 춤을 안 추고 노래만 하는 역할이었어요. 물론 연기와 노래를 함께 하는 것도 충분히 매력있는 일이지만, 저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대로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클래식은 생각도 못했고 샹송을 할까 고민하는데 아는 분이 프랑스에 있는 재즈학교를 소개시켜 주시더라구요. 유럽 최초의 재즈학교로 명성이 있는 곳이었어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지른 거죠.” 그의 나이 27세였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20대 후반은 조금 늦은 나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든지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재즈에 대한 열정은그녀를 낯선 프랑스 땅으로 이끌었다. 많은 청춘들이 떠나고자 하지만 결국은 둥지에 머물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
.. 하지만 진실로 좋다면 정열 하나로 끝까지 믿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저도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늦은 나이라는 건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싶으면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떠나는 거예요. 미래에 대한 담보가 없는 곳이면 어때요. 분명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나윤선의 음악은 결코 쉽지 않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다. 재즈라는 자유로운 장르 속에 살고 있는 그또한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운 사람이다. 지난 아시아 호주 투어에서도 그녀의 매력들은 여과 없이 발산됐다. 재즈는 인종과 국경을 넘어 모두 하나임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했는데 안이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아무도 제 노래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았어요. 다들 자기 할 일 하느라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라 내내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10분이 지나자 소리는 잦아들었고, 모두 공연에 몰입하는 거예요. 그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클럽에서 공연한다는 중국 재즈가수들이 제가 유럽에서 공연 활동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는 11월에 ‘메종 드 윤선’ 공연을 마치고 덴마크로 떠난다. 2007년 가장 먼저 선보일 닐스 란 도키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나윤선의 다짐을 끝으로 1시간 30분의 짧지만 흥분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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