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살릴 것이다(루가 17,33).
우리는 항상 주변에서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사실, 죽음과 삶은 우리 삶의 한 복판에
같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그것도 죽음과 함께 죽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죽음은 우리의 존재전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다른 말로, 그 죽음은 바로 나의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죽음이 주는 메시지를 깨닫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의 죽음을 직시하게 되고
어떠한 단계를 거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지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식의 단계는
삶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깨달음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 하면서
시편 저자와 같이 외칠 수 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나의 하느님, 온종일 불러 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시편 22,1-2).
“야훼여!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영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시편 13,1).
시편 저자를 통해 우리는 슬픔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시편은 아주 친근한 울음
또는 우울함으로 탄원을 드립니다.
셰익스피어는 “표현하지 않은 슬픔은
위험한 기분으로 몰아가고
그러한 슬픔은 우리를 파괴한다.”고 했습니다.
슬픔을 겪을 때 동상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할 수 있습니다.
“너무도 침울한 내 기분,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어?
아무도 내가 느끼는 것을 염려하거나 알지차리지를 못해.
사랑의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우울함은 갑작스럽게 또는 점차적으로 생깁니다.
평상시 나쁜 날 보다도
훨씬 더 우리를 바닥에 떨어 뜨리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기분은 소외를 동반해서 옵니다.
“멀리 떠나고 싶다. 어떤 사람이건 관심이 없어.
나는 사람들이 나를 혼자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느낌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처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감정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말입니다.
우울증은 불쾌한 것입니다.
이것은 찰거머리처럼 절망감이 따라다닙니다.
모든 구름이 회색빛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어떤 구름도 어두침침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이겨낼 거야.
힘을 내. 걱정하지마. 잘 될 거야” 라는
말을 듣는 다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어쩌면 잔혹한 말인듯합니다.
기껏해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리한 웃음을 강요받는 듯 합니다.
이말 뒤에 느낌은 이렇습니다.
“집어처, 너는 몰라.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우리가 가까운 어떤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우울증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갔을 때
“깊은 계곡에 밀려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동반자처럼 다가옵니다.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우고 수면을 취하기가 어렵습니다.
식욕이 당기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흐느끼며 울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스며들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우울증은 우리 존재에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스며듭니다.
이것은 우리 존재를 완전히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특별히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죽음의 충격을 깨달았을 때,
어두운 구렁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것들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 공감하는
친철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우울증이 드리운 먹구름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그 먹구름은 서서히 힘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한 구름이 사라지면서
믿음은 예전에 있었던 것처럼 다시 솟아납니다.
그러나 아주 서서히 말입니다.
그때 다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계속 슬퍼할 수 있고 잃음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진실로 직면할 수 있게 하는 신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적군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시작할 때,
회복하는 안내판입니다.
자신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버려짐뿐만 아니라
그분 부활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로마8,26-27)
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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