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그 뒤안길

붕당정치와 정조 대왕 이야기

뚜르(Tours) 2008. 3. 24. 11:15

 

 

조선 붕당정치의 시작은 세자책봉도 하지 못한채 서거한 명종 이후 선조가 급작스럽게 즉위하면서 외척에 의한 척신정치가 사라지고 사림(士林)이 정계에 대거 진출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진 붕당은 이후 여러가지 정치 사안에 대립하면서 동인은 북인과 남인, 북인은 다시 소북과 대북으로 나눠지게 되며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러다 인조 반정 이후 대북이 완전 몰락하고 서인과 남인 소북의 3당 연립 정권이 유지된다.  붕당정치 초기에는 붕당간 적절한 견제와 조화가 이루어 졌으나 시간이 흐르고 광해군, 인조, 효종에 걸쳐 여러차레 판국이 바뀌는 환국(換局)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는 오늘날로 말하며 정당 정권의 교체라 할 수 있다.) 일당 독재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고 이로인해 붕당간 치열한 권력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숙종때 이르러서는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자  탕평책이라 하여 붕당간의 정쟁을 타파하고자 하는 정책이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인 즉 노론과 소론이 조선 정권의 중심이 된다.

영조 초기에는 소론이 정권을 잡고 있지만 영조 후기에는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영조는 탕평책을 썼으나 노론 중심의 외척을 중신에 배치함으로 척신정치의 재도입을 유발하고 이 들은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다시 북당 남당으로 나뉘어 대치하게 된다. 이 들은 정조의 즉위까지 끝없이 대립하며 사도세자의 사사를 일으킨 남당은 정조를 세손때부터 끝없이 위협하게 된다. 지금 '이산' 이라는 드라마에서 초기에 그려지던 모습이다.

정조 즉위무렵  핵심 정권 세력으로는 홍인한, 정후겸, 김귀주등의 척신세력을 들 수 있다.

 
이들 척신세력의 공세는 1775년(영조51) 좌의정 홍인한이 이른바 동궁삼불필지지설「東宮三不必知之說을 제기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나 영조가 서거 직전 세손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들 척신세력은 결정적 타격을 입게된다.   정조 즉위 후에는 결국 이들을 척결하는데 그 초점이 마추어 지게된다. 이 과정에서 정후겸의 양모인 화완옹주(후에 서인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다 풀려난다.), 사도세자 사사에 주력한 남당의 중심 김귀주와 형제간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와 대립하게 된다. [HISTORY] -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 정조의 즉위 과정

정순왕후에 관한 이야기(imbc.com)
조선 500년사 중 역사를 거꾸로 돌린 두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인조와 정순왕후를 꼽고싶다.

그리고 척신세력의 척결을 위해 홍국영을 등용하여 척신세력 척결에 선봉에 배치한다. 허나 홍국영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정조는 홍국영을 권력의 중심에서 다시 끌어내린다. 이 후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던 정조 12년, 영의정은 노론 김치인(金致仁), 좌의정은 소론 이성원(李性源), 우의정은 남인 채제공을 임명함으로 당파가 분열된 이래 처음있는 일이라고 정조 스스로 자찬하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13년 8월에는 채제공을 좌의정으로 임명하고, 김종수를 우상으로 임명하게된다.  이 후 사도세자에 대한 문제로 이들 두사람은 시파와 벽파의 중심으로 갈라지게 되며 시파와 벽파는 정조 사후까지 다시 지속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시파 와 벽파



 

정조 사후  정조와 대립하는 입장이었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순조에 대한 수렴청정을 하게된다.


이 기간 동안 정조시대에 어려운 입지에 처했던 벽파가 시파를 압박하고, 정조의 모든 개혁정치와 기반을 파괴하고 장용영을 혁파하는등 정권을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정순왕후 사후에는 안동김씨 김조순이 이끄는 시파가 벽파를 완전히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왕권약화와 어떻게 보면 근대적인 정당정치의 시발로 볼 수 있는 붕당정치가 완전히 붕괴 되면서 조선 후기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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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산'은 영,정조시대 남당과 북당, 시파와 벽파간의 치열한 논쟁 속에 왕권을 강화하고 바른 정치를 펴기위해 노력한 정조의 일대기를 조명한 것이다. 앞으로 정조의 인간적인 면과  남당과 북당.시파와 벽파간의 치열했던 논쟁과 암투 그 과정에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력을 발휘하는 정조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한가지 의외인 것은  극중 조경환이  맡은  최석주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이 상당히 중요한 사람같은데 조선왕조실록이나 기타 검색에서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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