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당신이 무의식에 빠진 사이…
● 불면증과의 동침
빌 헤이스 지음|이지윤 옮김|사이언스 북스|456쪽|1만8000원
"40년 넘게요."
빌 헤이스(Hayes·47)는 까마득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불면증을 앓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코카콜라를 병에 담는 공장을 운영했다. 빌은 여덟 살 때 몽유병 증세도 있었다. 누나 섀넌은 헤이스가 밤 늦은 시각 잠옷을 입은 채 두 눈을 뜨고 텔레비전 앞에 멈춰서 고함을 질러댔다고 기억한다.
《불면증과의 동침》(원제 Sleep Demons)은 잠과 불면증, 그리고 그 비밀을 밝혀내려는 논픽션이다. 우선 헤이스는 1950년대 잠의 정체를 현대과학으로 규명하려 한 '수면(睡眠)과학'의 창시자 너새니얼 클레이트먼(Kleitman)과 유진 아제린스키(Aserinsky)를 소개한다. 1920년대 초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클레이트먼은 닷새간 잠을 자지 않는 실험을 수십 차례 실시했다. 수면 박탈을 다룬 최초의 체계적 연구였다. 이 실험을 통해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60시간 이상 깨어있으면 수면 부족의 악영향이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클레이트먼은 이를 통해 피로가 만든 독소가 체내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된다는 '수면 독소 이론'을 뒤집었다.
클레이트먼의 제자였던 아제린스키는 꿈의 비밀을 밝힌 '렘(REM· Rapid Eye Movement·급속 안구운동)수면'을 연구했다. 그리고 꿈을 꾸는 동안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아제린스키는 스승과 함께 1953년 '렘 수면'을 〈사이언스〉지(誌)에 발표한다. 렘 수면 중에는 심장박동, 호흡, 혈압은 변덕스럽게 오르내리고, 남성은 발기하지만, 모든 운동 근육은 마비돼 있다. 꿈속에서 뭔가에 쫓길 때,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딱딱할 듯한 과학 에세이에 글맛을 더해주는 것은 불면증에 얽힌 저자 헤이스의 체험이다. 헤이스는 관찰자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곳곳에 등장한다. 새벽에 일어나 수면제 앰비언과 할시온을 찾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스탠포드대 수면장애 클리닉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는 잠꼬대, 카페인 중독, 자장가, 수면제, 몽유병처럼 잠과 관련된 주제를 깔끔한 단편소설처럼 스토리를 엮어 요리한다.
책 속에는 헤이스의 동성연애 파트너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그의 16년 짝이었던 스티브 번은 에이즈 환자였고, 200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함께 번역돼 나온 《5리터》(인체 혈액 총량이 약 5리터라고 한다)를 쓰게 된 것도 에이즈 환자였던 번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 경험을 역사적 시각으로 확대시켜 스토리를 엮어내는 게 내 글쓰기 방식"이라고 했다.
헤이스는 요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500일 안에 극복하는 법'(가제)을 쓰고 있다. 번을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 자신을 추스르는 과정을 담을 예정이다. 우선 권투 도장에 6주간 등록했다. 여행을 떠나고,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는 식으로 10가지를 실천해 볼 요량이다. 이처럼 《불면증과의 동침》이란 책도 과학적 경험담이다.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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