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 막장은 탄광이나 광산의 갱도 마지막 끝을 말한다. 탄광산업이 성했던 70, 80년대 975개 전국 탄광에서 7만 광원이 일했다. 착암기로 작은 구멍을 뚫고 화약으로 발파시킨 막장에 석탄가루가 자욱했다. 2~3m짜리 무거운 나무를 등짐으로 날라 갱 바닥과 천장 사이에 세웠다. 이들은 가족의 끼니를 위해, 동생의 학비를 위해 고통을 견뎌낸 '산업전사'였다.
▶ 그런 막장이 요즘엔 아무 단어에나 붙어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막말과 격투기가 난무하는 국회는 '막장 국회' '막장 정치'라 한다. 불륜과 폭력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로 부른다. 막장이 '갈 데까지 가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타락한 상태'를 가리키는 접두사처럼 마구 쓰인다.
▶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막장'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호소문을 언론사들에 보냈다. 막장은 폭력과 불륜이 난무하는 곳이 아닌데도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막장은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고온의 지하 900m까지 파고들어가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현장, 진지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조 사장은 "광원과 가족들 가슴이 멍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 지금 삼척과 태백, 화순에 있는 6개 탄광에서 일하는 광원이 5000여명이다. 석탄공사는 낮춰 부르는 듯한 '광부'라는 말 대신 '생산직 사원'이라는 호칭을 쓴다. 사실 '막' 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막판처럼 마지막을 나타내거나 막말·막노동처럼 거칠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도 '막장'을 '갱도의 막다른 곳'으로 풀이해 놓았다. 그러나 막장은 막혀 있는 곳을 맨몸으로 뚫어내는 노동의 숭고함이 빛나는 곳이다. 드잡이판 국회, 저질 드라마는 '막장'을 수식어로 달 자격이 없다.
- 김동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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