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나대지 좀 마시라 / 최인수

뚜르(Tours) 2009. 6. 4. 14:41

어느 선거 땐가, 모 정당이 택시기사를 홍보요원으로 위촉했다는 무렵이었다.
택시를 탔더니 그 기사가 몇 마디 말을 건네고는 거두절미 ‘아무개를 찍으시오’한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왜요?’
‘그래야 나라가 삽니다’.
이런 안하무인이 있나. 나도 판단력이 있는데….
그의 차를 타는 고객은 그의 말을 따라야 된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 따르리라고 믿는 것일까.
오만인가, 푼수인가.

언제부터인가, 택시기사들은 말이 많아졌다.
승객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택시기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으니 싫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 날, 이야기를 잘한다 싶던 택시기사가 맹랑한 소리를 했다.
장관, 걔, 그것도 모르는 게 장관이라고….’
장관을 자기 발아래로 깔아뭉갠다.
그가 그 장관보다 더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오만은 누가 키웠는가.
그들의 오만이 그들을 키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지난 대선 때 인터넷에서 본 글이다.
‘정몽준이 이번엔 자네가 양보하게.
그래서 노무현이 당선되면 자네를 모른 척 하겠는가.
자네는 다음 차례에 하게’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인지 적은 사람인지는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하겠다고 나온 사람에게 자기 수하에나 할 법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그는 누구일까.

또 조순서울시장 때의 일이다.
한겨울, 시내버스를 한 40여분 기다리다 타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며 항의했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미안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조순이에게 가서 물어봐’
그는 조순시장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젊거나 나이가 많거나 서울시장이 그의 회사 홍보담당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국정에 참여하려고 방방 뛰는데 더러는 맹랑한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멀리 보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아는 지식(상식) 한 가지, 생각 한 토막을 절대화해서 들고 나온다.
‘참여’정부의 탓만도 아니다.
전 정권 시절에도 그랬고,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 나라가 백척간두에 내몰리고 있을 때도 그랬었던 것 같다.
당시, 나라를 걱정하는, 아니 사랑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달았던 듯하다.
독립협회, 보부상, 황국협회, 일진회….
그들이 내뿜는 ‘애국’ 열기는 침략자의 대포도 녹일 듯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라는 무참히 망했다.
말로 외침만으로는 침략자의 총칼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소리부터 지르지 말고, 애국심을 공통분모로 차분히 나라를 지키는 방책을 다각도로 의논하고, 실력을 기르고, 힘을 합했으면 혹 나라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두 애국심에 불탔고, 의기가 높았다.
그런데 그 애국심 때문에 갈라져서 싸웠다.
그들의 소리는 대부분 옳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리’일 뿐이었다.
어느 집단도 전적으로 옳지는 않았다.
옳은 것도 있었고, 그른 것도 있었다.
문제는 그 애국심과 옳은 주장(일리)에도 나라가 망한 것이다.

개화에 앞장섰던 독립협회도 그랬다.
지금 고려대학교를 창설한 이용익은 당시 독립협회로부터 고등재판소에 고발되는 탄핵을 받았었다.
(탄핵 사유 중엔 엄비(嚴妃)에 대해 불경스런 말을 했다는 嚴妃 亂言罪도 있었다.)
천민출신으로 나라의 중책을 맡은 그가 개혁세력의 탄핵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지만,
그가 고종의 총애를 받아 중용된 사실 때문에 수구세력으로 낙인찍혀 탄핵을 받아 마땅했는지,
왕실에의 충성이 순수한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는 길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는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고, 주색도 멀리했다니 도덕적으로는 매도당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가 학교를 세운 사실은 접어두고라도. 아쉬운 점은 독립협회나 그나 똑 같이 순수한 애국심이었다면
그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함께 나라를 지키는 방책을 연구, 힘을 모을 수없었나 하는 점이다.
지금 옛 일이 생각나는 것은, 현재의 모양새가 그 때와 비슷해 보여서다.
순진하게 생각해보면, 지금 갈라져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애국심’으로 무장돼 있다.
애국자들이 넘쳐 나는데 사태는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위기감이 증폭된다.
애국심 때문에 빚어진 갈등과 분열로 국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저들의 주장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옳은 소리가 많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건 그들만 전적으로 옳고, 상대방은 전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나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판단이나 방책이 그릇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지혜를 모을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우선 방방 뛰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상대방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그들은 그것을 몰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영악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겉은 애국심으로 포장했지만 속은 자리차지, 정권차지를 위해 상대방을 거꾸러트리려 온갖 지혜를 모으는데….
특히 위험스러운 것은 ‘목적만 좋으면 법은 무시해도 좋다’는 발상이다.
그 ‘선한 목적’이 정말로 선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동의(공감)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기 목적만 옳고 선하다고 들고 나와서 사회질서를 깨트리면….
무질서는 나쁜 질서보다 더 위험스러울 수 있다.

나대면 오판하기 쉽다.
지금은 방방 뛰기보다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최인수 / 월간 말벗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