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춘추시대 진(晉)나라에 기혜라는 대부가 있었다.
그는 매우 사리에 밝고 생각이 깊었으며 공정했는데, 나이가 들어 벼슬자리를 그만두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왕에게 간청하여 물러나는 것을 허락받았는데, 왕은 그에게 후임자를 천거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해호를 추천하였고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왕이 물었다.
"아니, 경이 천거하는 해호는 경과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오?
그렇게 늘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천거하다니 어인 일이오?"
그러자 기혜가 대답했다.
"임금께서는 저에게 인재를 천거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만 국사를 바르게 치를 인재인가 아닌가를 판단했을 뿐,
저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왕은 그의 천거를 받아들여 해호를 기혜의 후임으로 기용하였다.
그런데 임용을 하고 난 뒤, 얼마 자나지 않아 공교롭게도 천거를 받은 해호가 부임 전에 죽고 말았다.
그러자 왕은 재차 기혜에게 다른 사람을 천거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오라는 인물을 천거하였다.
"아니, 경이 천거한 기오는 경의 아들이 아니오?"
왕이 깜짝 놀라 묻자, 기혜는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없이 말했다.
"임금께서는 저에게 인재를 천거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신은 기오가 신의 아들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재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기오를 후임으로 기용하였다.
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은 모두 당대의 고명한 학자였지만 공교롭도 당이 달랐다.
허목이 남인의 우두머리라면 송시열은 서인의 우두머리로
그 당시 서인과 남인은 정권다툼으로 인해 몹시 불편한 관계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암이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다녀가고 좋다는 약은 모두 써 보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그러자 우암은 식구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 병을 고칠 사람은 이 나라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편지를 한 장 써줄 테니 그 어른한테 가서 처방을 받아 오너라."
우암의 장남이 물었다.
"그 어른이 누구인지요?"
"미수 허목이니라.
오직 그 어른만이 내 병에 대해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암의 뜻밖의 대답에 식구들은 모두 놀랐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반대를 하였다.
허목은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반대당 당수인데 그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미수는 절대로 그런 소인배가 아니다.
아무 걱정말고 어서 다녀오너라."
우암의 장남은 단호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쭈뼛대며 미수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자 미수는 우암의 편지를 받고 아무 말 없이 처방전을 써주었다.
그리고 미수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먹은 우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낫게 되었다.
병석에서 일어난 우암은 곧바로 미수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일로 인해 개인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아니다.
홍자성 지음 <CEO 채근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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