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후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도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오기 마련이다.
그만큼 후회는 피하기 힘든 복병이다.
거유(巨儒) 주희(朱熹)도 예외가 아니었나 보다.
그는 살면서 피하기 힘든 ‘복병 같은 후회’ 열 가지를 꼽았다.
이름하여 ‘주자십회(朱子十悔)’다.
첫째,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다.
불효하면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올 초 장모마저 돌아가셔 아버지·어머니·장인·장모가 모두 세상을 뜬 ‘고아(孤兒)’된 입장에선 더욱 절감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가시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살아 계실 때 말 한마디, 낯빛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둘째,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다.
가족끼리 친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후회한다.
자식이든 배우자든 가까이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멀어진 뒤엔 소용없다.
자식은 품 떠나면 그만이고 부부는 멀어지면 남만도 못해지는 법이다.
셋째,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다.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
나이 들어 공부하려면 분주하기만 하지 여간해서 성과 내기가 어렵다.
공부엔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 때를 놓치면 후회한다.
넷째,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다.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후회한다.
제왕의 교과서라 할 『정관정요』에도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이 나온다.
편안함에 거할수록 위기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다섯째,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다.
풍족할 때 검약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
새뮤얼 스마일스가 『검약론』에서 말했듯이 진정한 검약은 인색함이 아니라 적절함이다.
돈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때 제대로 쓰라는 것이다.
여섯째,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다.
봄에 밭을 갈아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
거둘 곡식이 없기 때문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사람은 결국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일곱째,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다.
담장을 제때 손보지 않으면 도둑 든 뒤에 후회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봤자 소용없다.
미리 챙겨보고 대비해야 한다.
여덟째,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다.
여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후회한다.
몸의 병도 문제지만 마음의 병은 더 깊기 마련이다.
아홉째,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다.
술에 취해 함부로 말하면 술 깬 뒤에 후회한다.
술이 말을 삼키면 감당할 수 없다.
자중해야 한다.
열 번째,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다.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후회한다.
손님만이 아니다.
기회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한때 천하를 거머쥔 듯 발호했던 안희정씨가
스스로 ‘폐족(廢族)’ 운운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5년 전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을 때 잘했어야 했다.
지나고 난 뒤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대통령은 5년뒤 뒤늦은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과 역사 앞에 더 겸허한 자세로 국궁진력(鞠躬盡力)하며
새 꿈을 생산해 낡은 후회마저 밀어내야 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말을 뒤집어서 “꿈이 후회를 뒤덮으면 우리는 나이는 들지언정 결코 늙진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우리 모두 새 꿈이 낡은 후회를 뒤덮게 하자.
그것만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정진홍 / 중앙일보 논설위원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 마리의 제비와 한 오라기의 풀 (0) | 2009.12.11 |
---|---|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0) | 2009.12.10 |
건배 < 乾杯, 乾盃 > (0) | 2009.12.08 |
‘사랑한다(love)’는 말과 ‘좋아한다(like)’는 말의 차이 (0) | 2009.12.01 |
"어머니가 폐결핵을 앓았던 베토벤..." (0) | 2009.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