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자라서 늙은 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이
부모를 극진하게 모시는 효심(孝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려 있는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구절이다.
진晉나라 때 무양武陽사람 이밀李密은 원래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진나라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관직을 내렸다.
난처해진 그는 늙으신 조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관직을 사양했다.
옛날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동양사회에서 예禮와 효사상孝思想이 확연히 확립되었던 시대에는
힘들고 어렵게 얻은 높고 낮은 벼슬에 종사하던 사람들 까지도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봉양해 드린 후에 다시 벼슬길에 불리어 나가 국가에 봉사하였다.
이는 조정과 여염집에서도 미덕으로 알고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제는 이밀李密이 노조모老祖母 보양을 핑계로 관직을 사양하는 것은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했기 때문에 촉한의 충신으로서 진晉나라 무제인 자신이 내리는 벼슬을,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는 것이라고 크게 화를 내면서
당장 관직을 받으라는 추상秋霜 같은 명령을 내렸다.
무제武帝의 강요를 받게 되자, 이밀은 진정표陳情表를 써서 올려 호소하기를
자기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개가改嫁한 탓으로 고아가 되었다.
자신을 평생 돌봐 준 조모에 대한 간절한 사랑 때문에 관직을 받을 수 없는 것이지
절개節槪와는 관심도 없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여’ 간곡하게 처지를 하소연했다.
“한낱 미물인 ‘까마귀도 자라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 효성을 다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늙으신 할머니를 끝까지 봉양할 수 있도록 헤아려 주십시오.”
라고 호소하면서 만약
“조모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고,
조모께서도 제가 없으면 여생을 편하게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올해 나이가 마흔 네 살이고, 조모 유씨는 아흔여섯 살이니,
제가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많이 남았고, 조모 유씨에게 은혜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만이라도 봉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조사정 원걸종양:烏鳥私情, 願乞終養)”
라고 진정 하였다.
이처럼 오조사정(烏鳥私情)은 ‘까마귀가 자라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
부모님을 모시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다.
너무나도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는 이야기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길러 주시고 보살펴 주신 은혜에 대하여
부모님에 대한 효도孝道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까마귀나 새들과 같은 미물微物보다도 더 못할 존재일 것이다.
항간巷間에는 부모의 재산을 탐한 나머지 효도는 고사하고 늙으신 부모를 구타하고,
심지어는 부모의 생명까지도 뺏는 자식들, 인간의 탈을 쓰고 동물만도 못한 자식들이
종종 매스컴을 통해 회자膾炙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선인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부모님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삼년 동안 살아 계실 때처럼 아침저녁으로 문안과 음식을 올리는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덕목이 바로 효사상孝思想이었는데,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고 눈이 붓도록 울면서 학교까지 결석했던 어떤 학생이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등교를 하더라’는 어느 교사의 말이
왜 아직까지도 우리들 뇌리를 떠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성영 / 시인 한국공간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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