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8년 9월 평양성을 포위한 당나라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어준 반역자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소장 요묘(饒苗)의 묘지가 확인됐다. 그는 이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황제를 호위하고 궁정을 수비하는 종3품 고위 무관직인 좌령군 원외장군에 올랐지만, 결국 고구려 유민에게 암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고대사 연구자인 김영관 청계천문화관장은 지난 2007년 12월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새로 발견된 '대당고좌령군원외장군고요묘묘지(大唐故左領軍員外將軍高饒苗墓地)'를 분석한 결과, 지석에 나오는 요동인 고요묘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오묘가 동일 인물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에 따르면, 고구려인 가운데 요(饒)라는 성을 사용한 기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삼국사기의 인명표기 방식에 삼국 모두 왕성을 가진 인물들은 성씨 표기없이 이름만 기록된 예가 매우 흔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소장 요묘는 고요묘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시안의 비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요묘 묘지명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알려진 고구려 유민 묘지명 중 20번째. 지석에는 고요묘의 죽음에 대해, "집안의 대문에 붙어사는 여러 귀신들이 재앙을 내려 (673년 11월 11일) 갑자기 사제에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 관장은 "병사나 전사 등 죽음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다른 묘지들과 달리 사실대로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시 3만호에 달했던 중국에 끌려왔던 고구려 유민이나 부흥운동세력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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