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은 건 후회없는데… 앞으로 기를 일이 막막해요"
"직접 양육" 자신하지만 당장 구할 수 있는 일은 저임금 단기 아르바이트뿐…
"낙태 말라고만 하지 말고 낳은 아이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만들어야"
"지울 생각을 왜 안 했겠어요…. 하지만 이제 이 아이가 없는 제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방울방울 눈물이 흘렀다. 문희수(가명·30)씨가 생후 95일 된 아들을 품에 안고 다독거리며 "걱정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문씨는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애란원'에 살고 있다. 애란원은 미혼모들이 분만을 하고 산후조리를 하며 직업탐색과 진로설계 서비스 등을 받는 곳이다. 한해 85명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지금은 40명의 미혼모가 지내고 있다.
당초 문씨의 임신은 계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분만을 앞두고 남자 친구와의 결혼이 틀어졌다.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할 처지가 되자 문씨는 낙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문씨의 아버지도 출산 직전까지 낙태를 권했다. 하지만 "생명은 위대하더라"고 문씨는 말했다.
"입덧이 심해 여러번 지하철에서 쓰러졌어요. 유산될 뻔한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도 끝까지 저에게 매달리는 뱃속의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는 낳아야 되는 아이'라고 마음을 굳히게 됐어요."
- ▲ 낙태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있는 미혼모 보호시설 애란원에서 만난 임산부들은“낙태하려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낳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이기고 자기 힘으로 의젓하게 아이를 키우는 게 이들의 꿈이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낙태 안 한 것 후회 않지만…
5일 애란원에서 만난 싱글맘들은 모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김현주(가명·22)씨는 방긋방긋 배냇짓하는 생후 50일 된 아들을 어르면서 "아이를 낳고 든 첫 감정이 '미안하다'였다"고 했다. 김씨는 출산 직후 아이를 입양 보냈다. 잊고 살겠다고 모질게 마음먹었지만 막상 떼어놓자 가슴 한쪽이 뭉텅 베이는 것 같았다.
"임신했을 때 낙태하려고 병원 앞을 서성이던 날도 많았어요. 아이를 낳자마자 일부러 얼굴도 안 보고 입양을 보냈는데, 그 후로 사흘 밤낮을 밥 한술 뜨지 못했어요. 울다 기절해 잠들곤 했죠."
결국 애란원 도움을 받아 입양 보낸 아이를 3주 만에 어렵사리 되찾아왔다. 김씨는 "척 봐도 내 아이인 걸 알겠더라"고 했다. 김씨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죠"라고 했다.
애란원에서 만난 미혼모는 열명 중 아홉명이 아이를 직접 양육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미혼모 대부분이 아이를 입양시키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양육을 선택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한상순 원장은 "입양 보낸 엄마들 대부분이 '자식을 포기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반면 양육하기로 결정한 엄마 중에선 후회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백이면 백, "이렇게 소중한 아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20여년 전 애란원에 왔던 '애란원 1호 싱글맘'의 아들도 무럭무럭 잘 커서 지금 학사 장교로 복무 중이다.
◆아이 키울 일이 두렵다
그러나 자립은 쉽지 않은 과제다. 애란원에서 만난 미혼모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해하면서도 차가운 세상에 나갈 일을 한없이 두려워했다. '미혼모' 꼬리표에 대한 사회의 냉랭한 시선이 두렵고,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김현주씨는 "홀몸일 때는 호프집 아르바이트 등으로 닥치는 대로 생활했지만 이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절실하다"고 했다. '아이랑 둘이 잘살 자신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잘살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녀가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일은 졸업장도, 자격증도 필요 없는 저임금 단기 아르바이트뿐이다.
가족과 친지에게 기대기 힘들다는 점도 미혼모들을 외롭게 한다. 만삭의 딸에게 낙태를 권했던 문희수씨의 아버지는 손주가 태어난 지 석달이 넘도록 아이 얼굴을 보지 않고 있다. 친구나 예전 직장 동료들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문씨는 "나중에 세상이 아이에게도 싸늘한 시선을 보낼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애란원은 자립 준비가 덜 된 미혼모들을 위해 2003년 서울 홍제동에 '애란 모자(母子)의 집'을 열었다. 빌라 한 채에 미혼 모자 14가구가 모여 사는 그룹홈이다. 대부분 20대 초반인 미혼모들이 낮에 아이를 인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업학교 등에 다닌다. 최대 2년간 머물며 그 안에 일자리를 찾아 독립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런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미혼모와 그 자녀에게 지낼 곳과 자립교육을 제공하는 미혼 모자 공동생활가정은 전국 19개뿐이고 그마저도 대개 5~10세대 안팎의 규모다. 여성계는 "낙태하지 말라고만 하지 말고, 낳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부터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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