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작은아이 가방에서 처음 보는 장난감 총이 하나 나왔다.
엄마가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친구가 줬어”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를 믿는 마음에 확인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며칠이 지나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엄마는 아이를 붙잡고 세세하게 물어봤다.
그제야 아이는 친구의 비밀창고에서 물건을 슬쩍 가져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당장 물건을 돌려주고 오게 했다.
앞으로 애가 어떻게 클지 걱정이라고 한탄하는 아내 옆에서 함께 걱정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다 아이가 며칠 동안 사실을 숨길 수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풀이 죽어 돌아온 아이를 조용히 불러 물어봤다.
잔뜩 움츠러든 아이는 “너무 놀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갖고 왔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혼이 날 게 너무 뻔해서, 그게 무서워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뻔한 훈계를 늘어놓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고 보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이가 느끼는 부모에 대한 두려움이 자유로운 소통을 막고 있다는 불안이 생겼다.
동시에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만일 신하나 백성들이 임금님에게 혼이 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대로
“보이지 않는 옷이란 없습니다. 그건 사기꾼들의 계략입니다”라고 미리 말을 했다면
임금이 망신을 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와 왜곡이 나라 전체의 망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 집이건 사회에서 진실을 말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채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질책만 하는 것은 부모나 사회지도층 입장에서 책임감이 없는 행동일지 모른다.
분위기가 살벌한데 누가 곧이곧대로 말하고 싶겠는가.
또 거짓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거짓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심리발달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장난감을 쥐고 “어느 손에 있게”라고 물었을 때 조막손에 잡힌 장난감이 뻔히 보이지만 짐짓 틀려주면 아이는 좋아라 한다.
아이가 뻔한 속임수에 어른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은
자기 본심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부모가 자기 생각을 모두 꿰뚫어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꽤 힘들다.
그런데 거짓말이 통하면 마치 밖에서 훤히 보이는 일층 집에 살던 사람이
커튼을 단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꿰뚫어 감시당한다는 불안감 없이 마음 편히 쉬며 그 안에서 자기 주관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본심을 숨기고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은 경계심을 풀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부모가 해줘야 할 일은 거짓말에는 적당히 속아 넘어가 줄 때도 있고,
필요할 때 지레 겁을 먹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을 스스럼없이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아이가 안정감도 가지면서 근본적으로는 솔직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걸 알면서도 아이의 거짓말이 빤히 보일 때마다 발본색원해서 초토화시키고 싶은 울화통을 참기 어려운 걸 보니 부모가 나아갈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다.
하지현 / 건국대 의대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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