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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귀한 야만인, 고갱은 왜 타히티로 갔을까?

뚜르(Tours) 2010. 4. 25. 15:46



      We Hail Thee Mary
      1891
      Oil on canvas
      44 3/4 x 34 1/2 in. (113.7 x 87.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고갱
      마리아를 경배하며
      1891년, 캔버스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화면 왼쪽 아래 쓰여진 라는 말이 그대로 그림의 제명이 되었는데
      그것은 타히티섬의 마오리족의 말로
      <아름다운 마리아>라는 수태고지를 알리는
      천사의 부름소리라고 한다.
      실제로 화면에는 안쪽에 있는 꽃나무 그늘에
      천사의 모습이 보인다.
      고갱은 종교적인 테마로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타히티인들의 생활모습을 표현하려한 것이다





Les Alyscamps, Arles
1888
Oil on canvas
35 7/8 x 28 3/8 in. (91 x 72 cm)
Musee d"Orsay, Paris


     




Blue Trees
1888
Oil on canvas
92 x 73 cm (36 1/4 x 28 3/4 in)
The Ordrupgaard Collection, Copenhagen






Still Life with Profile of Laval
1886
Oil on canvas
46 x 38 cm (18 1/8 x 15 in)
Josefowitz Collection









Contes barbares
1902
Oil on canvas
130 x 89 cm
Museum Folkwang, Essen






Riders on the Beach
1902
Oil on canvas
73 x 92 cm (28 1/2 x 35 7/8 in)
Private collection






The White Horse
1898
Oil on canvas
140 x 91 cm (55 1/8 x 35 7/8 in)
Musee d"Orsay, Paris






Paysanes Paysannes bretonnes
(Breton peasant women)
1894
Oil on canvas
26 x 36 1/4 in. (66 x 92 cm)
Musee d"Orsay, Paris






There is the Marae
1892
Oil on canvas
26 3/4 x 35 3/4 in. (68 x 91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Spirit of the Dead Watching
1892
Oil on burlap mounted on canvas
28 1/2 x 36 3/8 in. (72.4 x 92.4 cm)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최대 명작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한 후 성취한 모든 이론과
실제를 보여주는 현란한 이력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그림의 소재는 고갱의 체험에 의한 것이다.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와 새벽에 방문을 열었을 때
본 광경을 그림으로 구상화한 것이다.
" 테후라는 침대에 배를 깔고 나체로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도 불안했었다.
테후라의 공포가 나한테도 전해진 것이다.
그녀의 눈은 유황빛을 내쏟듯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나는 처음 보았다.
어둠속에서 위험한 유령과 불타는 욕망에 접해있던 이 소녀가
혹시나 두려워할까봐 나는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 했는지를 알고 싶었다.
아마도 곤혹스러운 얼굴로 보아 나를 귀신이나
그녀의 동족들을 잠못이루게 괴롭히는 투파파오의 해골쯤으로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Matamoe
1892
Oil on fine canvas
115 x 86 cm (45 1/4 x 33 7/8 in)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Moscow






Market Day
1892
Oil on canvas
28 3/4 x 36 1/8 in. (73 x 91.5 cm)
Kunstmuseum, Basel






Aha oe feii?
(What! Are You Jealous?)
1892
Oil on coarse canvas
68 x 92 cm (26 1/2 x 35 7/8 in)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Moscow






Femmes de Tahiti or Sur la plage
(Tahitian Women or On the Beach)
1891
Oil on canvas
27 1/8 x 35 7/8 in. (69 x 91 cm)
Musee d"Orsay, Paris






Faaturuma
1891
Oil on canvas
94.6 x 68.6 cm (36 7/8 x 26 3/4 in)
The 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Be Mysterious
1890
Lime wood and polychrome
73 x 95 x 0.5 cm (29 x 37 1/2 x 1/16 in)
Musee d"Orsay, Paris






M. Loulou
1890
Oil on canvas
21 5/8 x 18 1/8 in. (55 x 46.2 cm)
Barnes Foundation, Merion, PA






The Yellow Christ (Le Christ jaune)
1889
Oil on canvas
36 1/4 x 28 7/8 in. (92.1 x 73.4 cm)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Les Miserables
1888
Oil on canvas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Seascape with Cow on the Edge of a Cliff
1888
Oil on canvas
73 x 60 cm (28 3/4 x 23 5/8 in)
Musee des Arts Decoratifs, Paris






Breton Girls Dancing, Pont-Aven
1888
Oil on canvas
71.4 x 92.8 cm (28 1/8 x 36 1/2 in)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The Swineherd, Brittany
1888
Oil on canvas
29 x 36 1/2 in. (74 x 93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Still Life with Three Puppies
1888
Oil on canvas
34 3/4 x 24 5/8 in. (88 x 62.5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The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1888
Oil on canvas
73 x 92 cm (28 3/4 x 36 1/4 in)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Edinburgh

 

 

 고갱의 그림들 / 마광수


  고갱의 그림보다 그의 생애가 먼저 내게 와 닿았다. 나는 20세기 소설가 중에서 서머싯 모옴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가 쓴 소설 < 달과 6 펜스>를 통해 고갱을 만났던 것이다. 소설 속의 고갱은 처자식과 직업을 버리고, 오직 미술 하나를 위해 무작정 파리로 간다.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에 미쳐 자살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다시 타이티로 가 사는데, 거기서도 한 원주민 소녀를 만나 동거하다가 문둥병을 얻어 사망하는 것이다. 고갱의 그림에는 광기(狂氣)로 가득찬 '원시적 열정'에의 갈구가 묻어나오고 있다. 화필의 둔중함과 원색의 혼합에서 우리는 강력한 '원시주의(primitivism)'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붓 터치에서 하나의 즉흥곡을 듣는 것이다. 나는 '야한 것'은 'Primtivism'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즉 '원시적 야성(野性)'에의 향수가 현대미학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보디 피어싱(body piercing)' 이 그렇고 보디 페인팅이 그렇다. 고갱은 그것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대인들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원시시절을 그리워 한다. 고갱도 그랬던 것이 이닐까? 그가 화려한 도시를 버리고 외딴 섬 오지로 떠난 것은 그런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고갱의 그림은 고흐의 그림과 무척 닮아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 싸우다 갈라서, 고흐는 홧김에 자기의 귀를 짤라버리기까지 했다.정열과 정열의 마주침은 싸움과 결별로 귀결되고 만것이다. 나는 고갱의 그림에서 '둔중한 관능미'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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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갱은 이렇게 말했다.
    
    추상
  충고 한마디. 자연을 너무 곧이곧대로 베끼지 말게. 예술은 추상이야. 자연 앞에서 자네가 꿈꾸듯이 자연에서 추상을 뽑아 내도록 해. 결과보다는 창조행위를 더욱 많이 고민하게나
  슈페네커에게  퐁타방. 1888년 8월 14일
 
    양성
  만일 큰사람이 되고 싶다면, 오직 당신의  주체성과 양심 속에서만 행복을 찾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성을 초월한 양성으로 여겨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슴, 영혼, 요컨대 거룩한 모든 것은 물질의 노예, 다시 말해서 육체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들렌 베르나르에거, 1888년 10월
 
    귀족주의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는  고귀함, 아름다움. 고상한  취향,  지나간 그 시대가 앞세웠던 고결한 의무를 사랑한다. 나는 예의범절. 정중함,  심지어는 루이 14세조차도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유는 잘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귀족주의자이다 예술가로서 말이다. 예술은 소수를 위한 것이다 예술은 원래가 귀족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귀족만이 예술을 후원했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서. 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의 책무라고 느꼈기 때문에, 혹은 허영심으로, 예술을 후원했으리라.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들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창조물을 후원했다 왕과 교황이 예술가를 대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정치인, 은행가, 관리. 예술비평가는 예술을 후원하는 척 하지만 그들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어물전에  생선을 사러 온 사람처럼 꼬치꼬치 따진다 예술가가 혹시 공화파는 아닐까 하고! 

'알린을 위 한 메모'
 
    브르타뉴
  나는 브르타뉴를 사랑하네 이 곳에는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무언가가 있어 내가 신은 나막신이 화강암 대지에 닿을 때  나의 귀에는 내가 그림에서 찾고  있는 강하고 둔중하며 어렴풋한 색조가 들리거든 

슈페네커에게  퐁타방. 1888년」2월
 
    도자기
  도자기를 빚는다는 것은 한가로운  여흥이 아니다. 태곳적부터 도자기는   아메리카 인디언이 늘 아껴온 물건이다. 신은 한 줌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한 줌 진흙으로 우리는 귀중한 돌을 만들 수 있다. 한 줌의 진흙과 한 줌의 재주로!   '만국박람회 미술 촌평'
 
    세잔
  비평가 선생. 당신은 세잔을  이해하려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군요!  오늘 당신은 그를 떠받듭니다! 떠받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를 이해해야 하건만)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잔은 단색이다 " 하지만 다색 심지어는 다성이 라고까지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눈과 귀를 열어 보세요!...  세잔은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세잔인 것으로 만족한다!" 무언가 착각을 하시는군요. 만일 그것이 세잔의 본모습이었다면 화가 세잔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로티와 달리 세잔은 다독가입니다. 그는 베르길리우스에도  정통합니다. 렘브란트를 제대로 볼 줄 알며 푸생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환쟁이의 넋두
리'
 
    색채
  우리에게 참으로 불가사의한 감각을 불러 일으키는  색채는 수수께끼가 아닌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사용될 수 없다. 우리는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색채 자체에서, 색채의 고유한 개성에서, 신비롭고 불가사의 한 색채 내부의 힘에서 발산되는 음악적 감각을 만들기 위해 색채를 이용한다 상징은 정교한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음악처럼  색채는 떨림이다. 가장 보편적이며 따라서 가장 붙들기 어려운 내부의 힘을 색채는 날카롭게 포착한다  '다양한 사물
'
 
    코로
  나는 빌다브레 숲에서 노니는 코로의 요정들 앞에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파리 오페라극장의 무희들을 한번도 그림에 담은 쩍이 없으면서도  기쁨에 넘친 코로는 더없이 순박하고 진지하게 안개가 자욱한 지평선 아래 펼쳐지는 요정들의 춤을  그리고  있다. 파리 교외의 아담한 전원주택들은 영락없는 이교도의 사원이 된다 코로는 꿈꾸기를 즐겼으며 그의 그
림 앞에 서면 나 역시 꿈속에 잠긴다  '다양한 사물'
 
    드가
  자네가 드가를 만났다니 무척 기뻐. 나를 어떻게 도울 방도가  없을까 하고 동분서주하는 자네 모습이 눈에 선하이. 옳은 지적이야. 드가는 신랄하고 늘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다니지  (슈페네커가 그러는데 나도 그렇다는군) 하지만 자기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만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거든. 그는 천성적으로 선하고 똑똑하다네 몸가짐으로 보거나 재능으로  보거나 드가는 예술가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보기 드문 귀감이지  드가와 친하거나 드가를 숭배하는  사람 중에는 보나르,쥐비 . 앙토냉 프루스트 등등 쟁쟁한 인물이 많지만 드가는 절대로 청탁  따위는 넣지 않는다네. 그가 저열하거나 무식하거나 야비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들었다는 사람은 내 주위에는 한 사람도 없어 예술과 품위 "   몽프레에게  파페이테. 1898년 8월 15일
 
  그는 앵그르를 존경한다. 이 말은 그에게 자부심이 있다는  뜻이다. 실크 모자. 파란 안경에다 우산까지 쓴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공증인. 루이 필립 시대의 부르주아이다. 예술가처럼 꾸미는 데 털끝만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드가이다. 드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제복을 혐오한다. 자기가 입고 다니는 옷도 예외는 아니다. 선한 사람이지만 총기가 넘치다 보니 심술궂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혹은 짓궂다는 말도 듣는다. 비슷비슷한 소리이겠지만. 자신의 말이 무슨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 큰소리 탕탕 치는 젊은 평론가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드가, 그 인정 많은 심술쟁이 노인!"  드가가 심술쟁이 노인이라니! 궁정에 입궐하는 대사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노인을 닳았단  말인가! 인정 많다니! 그 얼마나 진부한 표현인가 드가가 겨우 그 정도인 줄 아는가!... 옳지, 젊은이의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  심술쟁이 노인. 드가는 기자들을  만나지  않는다 화가들은 드가의 인정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드가의 견해를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목을 매단다. 하지만 이 심술쟁이 노인, 퉁명스러운 사나이는 속마음을 좀처럼 털어놓지 알고 상냥하게 대답한다 "용서하시오. 잘 보이지가 않아요. 알다시피 내 눈이 이 모양이  되어 놓아서..." 그런 면이 있는가 하면 드가는 상대가 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젊은이에 대한 육감이 있다 지성으로 똘똘 뭉쳤으면서도 남의 부족한 지성을 탓하는 법이 없다. 그저 속으로 이렇게 뇌까릴 뿐이다 "차차 배우게 되겠지."  하지만 정작 본인 앞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로 그 길을 가면 앞으로 대성 할 수 있겠소."  처음  그림에 입문할 무렵 드가한테서 나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는 강자이지만 아무도 그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들라크루아
  색채에 완전히 감싸인 들라크루아가 색채를 자연 모방의 한 방식인 물리학 법칙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은 놀랍다. 색채 ! 그토록 심오하고 그토록 신비로운 꿈의 언어. 나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그의 본질적인 환상성과, 그가 살았던 시대 주름잡았던 그림들의 본질적인 산문성 사이의 거센 충돌을 희미하게 탐지한다. 반역을 기도하는 본능을 그도 어쩌지 못한다.  그는 자연의 법칙을 당당히 타고 앉아 상상력 에 모든 것을 내맡긴다  '다양한 사물'
  
      나약함
  사람들이 어김없이 도움을 받는 것은 그들의 나약함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 그들은 부탁하는 요령도 알아. 나를 도우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내가 강한 줄로 다들 알았기 때문이야 그때는  자부심을 느꼈지 지금 나는 약하고  지쳐 있네 무자비한 투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 기진맥진해져 버렸어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네 모든 자부심을  던져 버리고. 나는 영락없는 실패자야    몽프레에게   타히티 1896년 4월
 
    여자
  여자는 자유롭고 싶어한다 자유는 그들의 권리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남자가  그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자가 자신의 미덕을 배꼽 아래에  둘 때 그들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아마 더 건강해질 것이다.  

 '알린을 위 한 메모'

 

 

- 고갱, 고귀한 야만인, 시공사, 1996,  pp.176~187

 


 

출처 : 세계를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글쓴이 : 나뭇잎숨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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