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14좌 완등 / 박영하

뚜르(Tours) 2010. 5. 3. 13:32

오은선대장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정을 생중계하는 TV화면을 보면서
아나운서, 기자, 작가 3명이 앉아 중계하는 장소가 1년전 내가 올랐던 ABC(Annapurna Base Camp)여서 감개가 무량했다.
작년 이맘 때, 내가 히말라야를 찾았을 때는 박영석대장팀이 한 달가량 먼저 와서 강풍과 눈사태를 맞으며 안나푸르나정상을 공략하느라 사투를 벌리고 있었고,
4월 30일 카트만두를 떠나 귀국하던 날은 우리를 도왔던 셰르파가 엄홍길대장팀에 합류한다고 비행장으로 엄홍길대장 마중을 나왔었다.
그 무렵 여성등반가 고미영은 세번째로 높은 칸첸중가(8603m)를 올랐었고 오은선과 14좌 완등을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2009년 4월 20일 카트만두공항에 내려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포카라로 가서 1박을 하고 다음 날부터 산을 올랐다.
포카라 - 까네 - 포타나 - 데우랄리 - 톨카 - 란드럭 - 지누단다 - 춈롱 - 시누와 - 밤부 - 도반 - 히말라야롯지 - 한쿠동굴 - 데우랄리 - MBC((Machhapuchre Base Camp).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자고 25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죽 한그릇씩을 먹고는 ABC(Annapurna Base Camp)로 향했다.
뒤로 마차푸차레峰 위로는 금성이 반짝이고 앞쪽 안나푸르나 제1봉峰과 남봉峰 꼭대기로는 햇볕이 눈부시고.
1시간 40분만에 드디어 ABC에 올랐다.
ABC에서는 모두 9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우리가 ABC 에 올랐을 때는 새벽이라 약간은  서늘하였으나
해가 뜨고 난 다음에는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했으며 하늘 또한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었다.
우리가 가기 20일 쯤 전에는 이곳 ABC에 눈이 약 1.5m나 쌓여 입산이 허가되지 않았다고 셰르파가 말을 했는데도 건성으로 들었고, 산꼭대기를 가리키면서 능선 위로 뿌옇게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것은 눈이 강풍에 날리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줬는데도 별로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귀국해서 TV를 보니 박영석팀이 머무는 캠프에는 강풍이 휘몰아 쳐 텐트가 날라갈 듯 했고 
눈썹에 고드럼이 얼어붙었는데 우리는 히말라야에서 그런 상황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다.
高度 3,000 ~ 4,000m 와 6,000 ~ 8,000m 의 차이가 엄청남을 절감했다.

오은선이 2010년 4월 27일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섰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14 봉우리를 모두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됐다.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는 기억하지만 폴란드의 예지 쿠쿠치카는 모른다.
쿠쿠치카는 메스너가 1986년 처음으로 14 좌 완등에 성공한 이듬해, 뒤를 이어 14 좌를 오른 사람이다.
세월이 흐르면 오은선을 뛰어넘는 여성 산악인이 나오겠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은 영원한 것이다.
키 155cm, 체중 48kg이란 자그마한 몸뚱이로 해낸 쾌거다.
오은선의 별명은 ‘날다람쥐’  ‘독한 년’이라고 한다.
’날다람쥐’는 신체조건이고 ’독한 년’은 정신조건인데 둘이 잘 버무려져 14 좌 완등을 이룩할 수 있었으리라.

영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존경도 있지만 비판도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 때 박무택의 죽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는 비난을 받는다거나,
라이벌인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으로부터 칸첸중가 등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받는 것이나,
과잉 경쟁으로 후배 고미영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 등이 그렇다.
오늘 신문에서 오은선의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의 등반파트너였던 오이아르사발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오이아르사발은 1999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를 모두 오른 스페인의 국민영웅이다.
지금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재등再登에 도전하고 있다.
안나푸르나는 그의 첫 14좌 완등 때는 마지막으로 올랐던 산이고 두 번째 14좌 재등에서는 10번째 산이다.
그는 파사반과의 결별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언론 플레이를 하는 파사반이 맘에 안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전은 칭송하면서 경쟁을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하고 있었다.

하산下山한 오은선에게 기자가 소감을 물었다.
’더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다’
’지금은 그냥 쉬고 싶다. 따뜻한 찜질방에서 식혜나 마시면서 쉬고 싶다’
왜 아니겠는가.
거짓없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오은선에게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의 활동이다.
14좌를 완등한 메스너를 비롯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峰을 등정한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가 추앙을 받는 건 단순히 최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위업을 달성한 뒤 끊임없는 사회 공헌 활동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메스너는 고향에 등산학교를 세워 후학을 키웠으며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20권이나 되는 책을 써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산악문학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2008년 고인이 된 힐러리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자신 중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에 올랐나’라는 초등初登 논란에 시달렸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논란은 힐러리가 보여줬던 봉사와 헌신에 비하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에베레스트에 오른 첫 인간인 힐러리는 일찍이 “우리가 오르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검소하게 살며 모든 수입을 히말라야 재단에 넘겨 네팔에 13개의 진료소와 30개가 넘는 학교를 세웠다.
세상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자신을 누군가의 디딤돌로 낮춤으로써 존경을 받은 것이다.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정상은 내려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말도 있다.
오은선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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