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나 됐을까.
젊은 여성의 입에서 튀어나온 “쪽팔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 ‘쪽팔려’는 아득한 1960년대 양아치 세계에서 쓰던 말이 분명하다.
학생 중에서도 노는 티를 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그런 말을 흉내 내곤 했지만 대개는 창피해 차마 쓰지 못했고, 그저 뒷골목에서만 떠돌아다녔다.
요즘엔 ‘진상’이란 말이 방송에서도 나돌아 다닌다.
만나면 피하고 싶고 얼굴만 봐도 정나미가 떨어지는 존재를 지칭하는 이 용어 역시 건달들의 은어였다.
한데 그런 말들이 방송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쓰는 유행어가 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놀라고 만다.
권태로움 탓일까.
시대가 한없이 가벼워진 탓일까.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 번 푸념(?)을 해 봤더니 내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란다.
바야흐로 튀어야 사는 세상이고 무거운 얘기는 썰렁하고 따분하며 ‘꽝’이란다.
그러니 뒷골목 용어든 뭐든 맛있는 반찬으로 재활용해 좀 튀어 보자는 데 뭐 이가벼움에 대하여 상할 게 있느냐는 얘기다.
하기야 나도 짐작은 했다. 반성도 하고 있다.
예전엔 노래방에서 서태지의 노래를 기를 쓰고 흉내 내는 중년이 몹시 애처로워 보였으나 지금은 박수도 친다.
욕설과 막말을 겁내지 않는 예능 프로의 출연자들,
약장수처럼 속사포를 쏟아 내는 종교인들,
머리 위로 하트 모양을 반사적으로 그릴 줄 아는 정치인들은
다 시대를 아는 생존과 성공의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벼움은 상술이 되고 돈이 되고 유행이 된다.
그리하여 요새 와선 버스 뒷자리에서 여학생들이 말끝마다 ‘X나’와 ‘X발’을 달아 큰 소리로 떠들어도 군말 없이 참는다.
그들도 다 배운 가락일 테니까.
하지만 문득 돌아보면 공기 속에 떠도는 이 모든 가벼움 속에서 저나 나나 외톨이라는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이 있었지만 그 작가가 하나도 가볍지 않은 얘기에 왜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아무 스토리도 없이 그냥 가볍기만 한,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공포감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바둑에서 가벼움, 그러니까 가벼운 행마는 최고의 기술이지만 ‘적진’ 속에서 쓰는 기술이다.
적진 속에서 무겁게 움직이는 것은 자살 행위다.
위급하면 항시 꼬리를 떼어 주고 달아나야 하기에 가볍게,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반복하자면 가벼움은 적진 속에서 살아남는 기술이다.
혹 이 시대를 풍미하는 가벼움도 그런 뜻일까.
사방이 적이기에, 믿을 사람 하나 없기에 행여 뒤탈 없도록 가볍게, 가볍게 움직인 것이고 그러다 보니 유행이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도 직장에서도 무거운 얘기를 해 본 지 아득하다.
타이거 우즈의 퍼팅 하나가 100만 달러였다느니 성 상납 리스트에 누가 올랐다느니 뭐니 하는 얘기를 북한 핵 하고 비빔밥처럼 섞어 늘어놓으며 다들 본의 아니게 부평초처럼 뜬구름처럼 그렇게 산다.
가끔은 무거운 시대가 그립다.
『천재론』이란 책에는 가난한 작가가 생전 처음 원고료를 받았는데 너무도 순결한 그 하얀 봉투를 차마 뜯지 못하고 굶어 죽은 얘기가 나온다.
이런 썰렁하고 따분하며 ‘꽝’인 그런 얘기들이 가끔은 그립다.
나만 그럴까.
혹 말은 못하지만 다들 그런 것 아닐까.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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