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그 뒤안길

[시론] 그 난리 치고 TV 토론 도망간 사람들

뚜르(Tours) 2010. 6. 15. 15:28
양기화 신경병리학자

'광우병 파동'이 2년 지났다. 온 나라를 혼돈에 빠트렸던 '광우병 괴담'은 요즘 거의 사라졌다. 이제 '미국 소는 미친 소' '한국인은 백인보다 광우병에 두세 배나 잘 걸린다' '화장품, 생리대도 안심할 수 없다' 등의 얘기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우려도 눈에 띄게 사그라졌다. 싹쓸이 태풍은 지나가고 그 자리에 이성(理性)이 들어서게 돼 다행이다. 하지만 그 여진(餘震)은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얼마 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상담했다. 이 학생은 최근 어금니를 뺐다. 그 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광우병 괴담을 봤다. '라면 수프, 우유, 과자 등을 통해서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 '이빨 빠진 자리를 통해서도 광우병 걸린다'는 황당한 얘기를 믿고 그 학생은 광우병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나의 블로그에 "어떡하면 좋으냐"며 하소연의 글을 매일 집요하게 올렸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관련 논문도 보내주고, 연구 데이터를 보여줬다. 그래도 안 믿었다. 그 학생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 데 꼬박 40여일이 걸렸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2년 전 중학교 시절에 '뇌 송송 구멍 탁' 공포가 머리에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런 학생들은 도처에 있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 광우병 광풍(狂風)이 불던 시절 나는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미국산 소는 안전하다는 설명을 했다. 100여 편의 논문과 10여 관련 서적을 읽고 온갖 광우병 괴담의 허위성을 반박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자 '광우병 세력'의 타깃이 됐다. 악성 댓글이 블로그를 도배했고, 휴대전화에는 '길가다 칼 맞을 수 있으니 가면 쓰고 다녀라'라는 폭언도 찍혔다.

나는 의학자이다.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관심도 없다. 나는 정부를 두둔한 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두둔했을 뿐이다.

'뇌송송 공포'를 확대 조장했던 자칭 광우병 전문가들에게는 광우병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전문가를 '날조 전문가'로 비아냥거리면서 요즘에도 "광우병이 오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떨어지는 얘기들을 예나 지금이나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한 TV 방송국으로부터 생방송 토론 출연 제의를 받았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다양한 시각으로 되짚어 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광우병 안전' 쪽 패널로 내가 뽑힌 것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과학적 사실을 갖고 토론을 할 기회라 생각하고 출연을 받아들였다. 자료를 모으던 중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광우병 위험측 대표 인사'들이 죄다 TV에 나오는 것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줄곧 광우병 위험을 강조해왔던 수의학자 A교수는 방송 출연을 안 하는 것이 소신이라는 이유로, 시민운동가 수의사 B씨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시민운동가 의사 C씨는 방송 출연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토론회 참가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토론회는 과학자나 의학자 없이 촛불 시위 2년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짚어보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광우병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자신들만이 광우병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던 사람들이 정작 공론(公論)의 장에는 왜 나서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언론사에 피켓 들고 가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칠 기회를 왜 스스로 마다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광우병 공포,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