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7일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순교자 기념일-마르코 12,1-12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초대 교회의 순교자로 유명한 페르페투아 성녀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귀부인이었다.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에 대한 역사를 쓰기도 했다. 203년 무렵 그리스도교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하였다.
펠리치타 성녀는 페르페투아 성녀의 여종으로서, 박해와 죽음의 위협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203년 무렵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하였다.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 자를 죽여 버리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 한마음! 독서회, 봉사회
님들~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지난 겨울 얼~마나 추웠던지 영영 오지 않을것 같은 봄이
우리들 마음속에 성큼
향긋함으로 자리 잡은것 같습니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만날수 있는
우리들만의 따듯한,시와 음악이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방에서
우리들의 멋진 꿈과 희망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 해봐요.*^^*
우리님들~~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기쁘고 힘차게ㅎㅎㅎ
4월 만나는 날 까지 건강하시라고 스테파노가 늘~~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불쌍해서, 가련해서, 안쓰러워서, 안타까워서 뽑으셨습니다.
그 측은한 존재 이스라엘,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벌레 같던’ 이스라엘이었지만 과분하게도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얼르고 달래면서, 감싸고 어루만져주면서 그렇게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귀염둥이 딸이 슬슬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빗나가는 것뿐 만 아니라 가서는 안 될 길, 죽음의 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하느님께서는 심부름꾼을 보냅니다. 그리고 당신의 애타는 마음이 담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제발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다시금 너와 내가 맺은 첫 계약을 기억하라고, 첫 사랑으로 돌아가자고...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보내신 심부름꾼을 그때 마다 족족 매질하고, 폭행하고, 죽여 버렸습니다.
이런 하느님과 이스라엘 간에 이루어졌었던 배신의 역사, 반역의 역사는 어쩌면 오늘 우리 각자의 역사 안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과분하게도 하느님께서 나를 생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미물 같던 나를 애지중지 돌봐주셨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아무 상관없는 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처음의 나를 생각하면, 이끌어주신 하느님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아갈 삶의 정답이 바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불만할 일 하나도 없습니다. 소작인들처럼 잔머리 굴릴 일이 아닙니다. 바리사이들처럼 남의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그저 과분하게 생각하면서, 그저 기뻐하면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