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오늘의 묵상(재의 수요일 다음 금요일)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 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이렇게 말씀해 주시리라. "나 여기 있다." (이사 58,6-9)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여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당신의 제자들도 단식을 할 것이라고 일러 주십니다. 그 말씀은 당신께서 제자들을 떠나고 나면 제자들이 슬퍼서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신 삶을 통해 보여 주실 진정한 단식을 제자들이 실현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단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억압 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며, 굶주린 이들, 헐벗은 이들을 따뜻이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삶이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참된 단식'인 것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떠나신 다음, 제자들은 이런 참된 의미의 단식을 그들의 스승처럼 삶을 통해 실현했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말씀대로, 가난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에게 단식은 '고행'이 목적이 아닙니다. 고통 받는 이들,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깊이 기억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 참된 단식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별히 '보잘것없는 이들' 안에서 '신랑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전재) ♬배경음악:Stellar Si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