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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일)

뚜르(Tours) 2011. 3. 20. 11:12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일) 제1독서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 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 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 12,1-4ㄱ) 제2독서 사랑하는 그대여,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 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 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8ㄴ-10)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애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꼐, 또 하나는 엘이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 하지 마라."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 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 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마태 17,1-9)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 께서 침묵 속에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쾰른의 어느 어둡고 습한 지하 동굴에 누군가가 새겨 놓은 글입니다. 먹구름 뒤에 찬란한 태양이 있음을 믿듯이, 전쟁의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는 아름다운 고백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눈부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먹구름 너머에 언뜻 찬란한 태양이 비추듯,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그 너머에 부황의 찬란한 영광이 있음을 잠시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비행기를 타 보면, 지상과는 달리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운해(雲海)가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이 먹장구름처럼 몰려오고 폭풍우에 휘말려 들 때도, 우리 삶 한 겹 바로 저 너머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희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찬란한 영광, 그 부활의 영원성을 우리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살아야겠습니다. (매일 미사에서 전재)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구원 사업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데서부터 구체적으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하란에 살던 이교도들 중의 한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 12,1)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즉시 믿음으로 답하고 하느님의 분부대로 자신의 집과 일가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여기서도 먼저 부르시고 찾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먼저 화해와 친교의 손을 내미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는데, 과연 아브라함에게는 이렇게 구세사 안 에서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러한 부르심을 받을만한 어떤 자격이 있었을까요? 성서에서 보면 그가 이교도였다는 것과 자식이 없었다는 것, 그 외에 뚜렷하게 특기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무슨 인물이 잘났다든지 하는 어떤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를 뽑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본래 그런 것에 개의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 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택하신 것도 그 이유는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서였습니다. 결코 그들이 잘 났거나 그들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이면서, 또 동시에 그들을 통해서 구하 시고자 한 모든 이를 향한 그러니까 우리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에서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응답하 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열매로 하느님께서 온 인류에게 내리시는 축복을 낳았습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거룩하고 조용한 부르심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내리고 있습 니다. 그 부르심은 너무나 은밀하고 자칫 지나쳐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 부르심이 내 것이 아닌양, 아니면 세상의 우연의 일치로 지나쳐 버립 니다. 침묵 속에 조용히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욕구를 살펴 보십시오. 그 변화와 욕구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세상에 투신하게 하여 하느님의 영광 을 드러내도록,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이 시간에도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길 빕니다. 회장실에 들어간 A 씨에게 옆칸 사람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안하게 웬 인사? 혹시 휴지가 없어서인가 싶어 A 는 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상대방은 별 얘기가 없다 잠시 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점심식사는 하셨어요?" A는 ’화장실에서 무슨 밥 먹는 얘기를 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습니다. "네, 저는 먹었습니다. 식사하셨습니까?" 그러나 다음 말에 A 는 그만 굳어버렸습니다. "저....., 전화 끊을게요. 옆에서 이상한 사람이 자꾸 말을 거네요." 오늘 깨어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2011.03.20. Martinus  
    The Prayer - 셀린디온 & 안드레아 보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