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상생의 원리와 생존의 원리

뚜르(Tours) 2011. 5. 4. 08:33

이 세상에서 ’다 같이 잘 살자’라는 구호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 현실에 적용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상생(相生)의 원리를 기업과 납품업자 간 관계에 적용할 때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상생의 원리와 함께 ’생존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매일 올림픽 경기를 벌이고 있다.
세계 최고들과 금메달을 향한 사생결단의 처절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대기업이 지면 우리같이 내수 시장이 좁은 나라에서는 대기업은 물론 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도 미래가 없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은 가격과 최고의 품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이 기업들에 납품되는 제품들이 최고의 품질과 최저의 가격을 가질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납품 기업들이 자기들끼리 최대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생존의 원리’이다.
생존의 원리의 핵심은 경쟁 촉진을 포함한 ’합리 추구권’이다.
모든 기업은 원가(原價)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합리적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갖는다.
경쟁이든 혁신이든 구조개편이든 그것이 원가를 줄일 수 있다면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모 대형 전자업체 CEO가 전한 사례를 들어 보자.
이 회사는 특정 부품을 4곳의 중소업체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 때문에 업체를 2곳으로 줄여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줄임을 당하는 2곳의 납품업자는 이것이 상생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각계에 진정을 하며 반발했고 이 회사는 온갖 곳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그 계획을 취소하고 말았다.
이것은 상생의 원리가 잘못 적용되어 생존의 원리를 해친 예이다.

그러나 이 ’합리 추구권’은 무제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정의 원리에 의해 엄격히 제약되어야 한다.
대기업 중에는 합리성을 추구한다며 공정의 원리를 위배하여 납품업체의 등을 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마치 향후에 전량(全量)을 구매해 줄 것처럼 오도하여 납품업체로 하여금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게 해 놓고는 시장 상황이 변하면 나 몰라라 내던짐으로써 납품업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 같은 것이다.
이런 행위는 불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책임을 못 묻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상생은 바로 이러한 불공정행위가 사라지는 것이 그 근간이다.

진정한 상생은 생존의 원리인 ’합리 추구권’과 상생의 원리인 ’공정성’이라는 두 축의 조화 속에서만 가능하다.
자칫 전자가 희생되면 모두가 망하고, 후자가 부인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중소기업들을 피폐시켜 역시 우리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최근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책임져야 하는 지식경제부 장관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납품가를 깎는 대기업 임원은 해고시켜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상생의 원리에 매달려 생존의 원리를 무시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질까 우려된다.
이런 발언은 결국 기업의 합리 추구권을 훼손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싸워 이겨야 하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헤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 발언이다.

 

                     전성철  /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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