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서바이벌 게임’의 시대

뚜르(Tours) 2011. 5. 5. 08:01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의 시대입니다. 단순히 장애물을 뛰어넘는 경기라 해도 상대방과 비교해서 어느 한 사람은 탈락되는 것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과체중 경쟁자들끼리 몸무게를 줄이거나 심지어 청춘 남녀가 짝을 찾는 프로그램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총탄이 퍼부어지는 가운데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체득하는 전쟁놀이에서처럼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의 총탄을 발사해 상대방을 제압하고 적진에 깃발을 꽂는 본래 의미의 ‘서바이벌 게임’이 직장인들의 연수과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동호인 모임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동안 댄스와 안무 위주로 눈길을 끌었던 아이돌 그룹에 비해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실력파 가수들이 줄지어 출연하는 것도 그렇지만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쟁쟁한 기성 가수들을 대상으로 반드시 어느 한 명을 탈락시켜야 하는 경쟁구도 자체가 새로운 진행 방식입니다. 

 

   지난해 ‘슈퍼스타K’로 인해 이런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어느덧 방송계의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잡아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현재 ‘위대한 탄생’, ‘오페라 스타’, ‘신입사원’ 등이 진행중에 있으며, 방송이 예고된 프로그램도 한둘이 아닙니다. 열대의 섬 하와이를 무대로 펼쳐지는 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게임이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평가입니다. 어느 출연자에게도 특별대우가 주어져서는 안 되며 있는 그대로 점수가 매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나타났듯이 탈락결정을 했다가 번복하는 경우에 공정성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심사가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해야만 탈락자도 결과를 흔쾌하게 수긍하게 되고, 따라서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디션 및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방식입니다. 노처녀로서 그다지 내세울 것 없던 수잔 보일을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브리튼즈 갓 탤런트’를 비롯해 ‘아메리칸 아이돌’ 등의 포맷이 우리 텔레비전에 비슷하게 옮겨진 것입니다. 열흘 전 막을 내린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만 해도 미국 ‘프로젝트 런웨이’의 한국판인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누구나 본인의 실력과 노력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출세의 기본으로 여겨지던 학력과 인맥은 여기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별이나 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본인이 평소에 갈고닦은 실력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사다리 타듯이 올라가며 우열을 가리는 퀴즈쇼가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말 그대로, 언제 어디에 갖다 놓아도 자신의 실력만으로 버티고 견뎌서 살아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서바이벌 게임의 매력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은 누구에게나 똑같아야 합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간과 자연(Man&Wild)’에 등장하는 베어 그릴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영국 특수부대 출신 탐험가인 그는 거의 맨몸으로 아마존 밀림과 사하라 사막, 시베리아 벌판 등 극한의 환경에 혼자 떨어져서도 무사히 살아나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현상을 바라보면 이러한 텔레비전의 노래자랑이나 퀴즈쇼만도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득권층의 장악력이 워낙 완강해서 개인의 실력만으로는 뚫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대기업은 하청기업의 단가를 후려치는 방법으로 옥죄고 있으며, 노조는 노조대로 자기 자녀들을 우선 채용해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실력보다는 캠프 인물 위주의 낙하산 인사로 산하단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변칙적인 특혜인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제약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 노력껏 흙탕물을 걸러 마시며 헤쳐나간다 해도 우리의 사정은 혹한의 툰드라나 파타고니아의 협곡지대보다 더 험난하기만 합니다. 나름대로 창의적인 기술을 내세웠던 벤처기업들이 기술만 빼앗기고는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풍토입니다. 실력보다는 오히려 적당히 타협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으며, 때로는 향응과 뇌물을 바치기도 해야 합니다. 게임의 룰이 공정성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인기는 공정성을 잃어버린 우리 전체 사회에 대한 하나의 반작용이자 경고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1등만 떠받드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서도 곤란하지만, 실력을 갖춘 사람들을 교묘히 따돌리고 왕따시키는 분위기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요즘의 ‘서바이벌 게임은 그런 교훈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영섭의 ‘세상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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