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정치의 품격이 국민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뚜르(Tours) 2011. 8. 1. 09:49

 

#    소설가 박완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애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최순우의《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를 자주 꺼내보고 꾸준히 애독한다. 
까닭은 우리의 고건축을 비롯해서 자기, 회화, 공예품 등 한국의 미美 전반에 대한 그의 높은 안목에서 배우고 깨우치고 공감하는 기쁨 때문일 것이나, 더 큰 보람은 그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우러나는 그의 인격을 흠모하게 되는 마음이다.
우리가 미처 발견 못한 미美를 먼저 발견한 안목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안목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흔히 과장되거나 선동적인 문장을 쓰는 경우가 많다.
허나 최순우는 그가 발견하고 느낀 한국의 미를 내면內面 깊숙이 스며들게 한 뒤 비로소 글로 표현해서 읽는 사람에게 그의 것을 번지게 하는 힘이 있다.>


#    엘리자베스 2세가 중국 고위 관리와 만찬을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서양식 테이블 매너를 잘 모르는 중국 관리가 식사 전 손가락 씻는 물을 담아 내놓는 그릇인 핑거볼(Finger Bowl)에 담긴 물을 그만 마셔 버렸습니다.
그러자 여왕은 태연하게 자신도 핑거볼의 물을 함께 마셨습니다.
물론 궁정예법에는 어긋납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민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    조지 워싱턴은 두 번(사실은 세 번)이나 선거 없이 미국 대통령에 추대된 인물입니다.
그는 십대 초반, 정신적 귀족이 되기 위한 수칙을 스스로 정했습니다.
그 수칙은 프랑스 제수이트 교단의 수칙에서 따온 것으로 ’교양과 고결한 품행을 지키는 110가지 수칙’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습니다.

"비록 적이라도 남의 불행에 기뻐하지 마라."
"아랫사람이 와서 말 할 때도 일어나라."
"저주와 모욕의 언사는 쓰지 마라."

워싱턴은 이 원칙들을 평생을 두고 지켰습니다.
200년이 넘도록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그의 인품과 덕망은, 이처럼 남을 배려하는 귀족을 꿈 꾼 소년 시절에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 4
옛날 인도에 아주 겸손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체 높은 임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머리를 숙여 온 국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하 한사람은 임금의 그런 행동은 권위 없는 행동이라며 말렸습니다.
"폐하! 사람의 신체 중에는 머리가 가장 소중한 것처럼 나라에서는 임금이 가장 귀하옵니다.
그런데도 지체 높으신 폐하께서 아무에게나 머리를 쉽게 숙이시면 신하들이나 백성들은 오히려 불편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차후에는 이를 삼가 주소서!"
임금은 신하의 이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서 그 신하를 불러, 미리 준비해둔 고양이 해골과 말 해골 그리고 사람의 해골을 건네주며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세 개의 해골을 궁 밖으로 갖고 나가서 팔아 보시오."
신하는 임금의 명령대로 그것들을 가지고 궁 밖으로 나와 팔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해골이 맨 처음 팔렸습니다.
그것이 있으면 쥐가 없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말 해골이 팔렸습니다.
그것을 문에 매달아 놓으면 병이 낫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해골만은 쉽게 팔리지 않았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하는 마지막 남은 사람의 해골을 팔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 다녔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며 냉대를 했습니다.
결국, 신하는 그것을 팔지 못한 채 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신하를 보고 임금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경은 내게 사람의 머리가 제일 소중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보니, 고양이 머리나 말 머리보다도 못하지 않소?
대체로 사람의 머리가 귀하다 함은, 그 머리에 간직된 생각이나 마음 그리고 지식을 말하는 것이지, 머리 자체는 아닌 것이오.
이제 그 사실을 알았으면 단순히 권위나 체면만 내세우지 말고 남에게 머리를 많이 숙이시오."
임금의 충고에 신하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품위와 권위를 내세우며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일수록 머릿속은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민주화한 한국 정치판에 귀족이 없습니다.
정치를 업으로 삼기 전에 소년 워싱턴처럼 귀족의 품격을 생각하는 마음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가능합니다.
이권과 세력을 쫓아다니는 작태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공익을 위해 사익을 버릴 수 있는 정치인이 귀족입니다.
고결한 덕성, 용기, 지혜를 가진 정치인이 귀족입니다.
바람 앞의 갈대처럼 대중의 비위나 맞추는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비판하다가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는 귀족정치가 차라리 더 민주적이라고 하였습니다.
품격과 지혜를 겸비한 귀족들이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차이를 말살하고 특권이나 없애는 게 민주화가 아닙니다.
민주가 범람할수록 민주공화국의 귀족이 그립습니다.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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