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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뚜르(Tours) 2011. 11. 13. 23:29

 

    오늘의 묵상(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말씀의 초대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을 꾸짖는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 임을 잊어버리고 이민족의 임금을 따르고 우상을 섬기며 안식일의 정신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받는 고통을 하느님의 징벌로 이해한다(제 1독서). 눈먼 이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친다. 그는 예수님만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이 마음 놓 고 부르고 소리칠 수 있는 분이시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 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이 말이 마음에 들어,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 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자기 민족만의 고유 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스라 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 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 단을 세우고,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 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 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 린 것이다.(1마카 1,10-15.41-43.54-57.62-64) 복음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 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 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 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루카 18,35-43) 오늘의 묵상 예리코에서 구걸을 한던 눈먼 이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마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렇게 앉아서 구걸하던 눈먼 이마저도 알 정도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 다. 예수님께서 진정 만나고자 하시는 사람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이들이 그 눈먼 이를 꾸짖습니다. 앞서 가던 이들은 아 마도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이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서 만나셔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감히 구걸하는 눈먼 이가 예수님께 소리를 치니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으로만 보이는 것입 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자신들과 존재 자체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 에서조차 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도 이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사는 세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신들의 세상' 이 아니라 '불완전한 피조물의 세상'이기에 누군가는 그 불완전을 사는 사 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가난한 이가 있고, 장애인이 있 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적어도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면, 또는 성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가난하게 살고 있고, 장애를 앓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겪어야 하는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보다 죄가 많아서도, 존재 자체가 천해 서도 아닙니다. 이 불완전한 세상을 나 대신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 뿐입니 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가 되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피조물로 살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매일미사에서 전재) --------- ------ ------------------------------------------------- 오늘의 기도 "하느님, 구원의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쳐 주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1.11.14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