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그림의 떡

뚜르(Tours) 2012. 1. 8. 23:30

어린 시절 많이 듣던 "그림의 떡"이 생각납니다. 그림의 떡이 아무리 먹음직스럽다고 한들 먹을 수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의미로 쓰였던 말입니다. 맞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난하던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유명 화가의 떡 그림 한점이면 떡을 몇 차 사고도 남을만큼 값이 많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그동안 우리 경제가 발전한 덕택으로 우리도 이제 배가 부르게 되었기 때문에 먹는 것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된 때문이 아닐까요? 즉, 배가 부르게 되니 이제는 문화와 예술같은 다른 가치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과거 세 끼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문화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일 뿐 일반 서민들에게는 사치스런 단어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고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부터 예술이나 문화도 점차 일반 대중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우리 나라가 세 끼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을까요? 유엔은 빈곤을 "하루 1달러($1/day)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하루 1달러에 도달하면 그 나라는 빈곤을 해결했다 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의에 의하면 한국은 1973년 1인당 국민소득이 404 달러가 됨으로써 처음으로 세 끼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한 셈이 됩니다. 그 이전이라고 해서 예술이나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일부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었지 대중화는 아직 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 아닌 경제학도로서의 제 생각입니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1인당 국민 소득 2만 달러 수준이 되었고 GDP(국민총생산)는 1조 달러 수준이 되어 세계 15개국 밖에 없는 1조 달러 클럽 회원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GDP 가 1조 달러가 넘는 나라는 먼저 G7(Group of 7,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태리, 카나다) 7개국에 스페인 그리고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이렇게 해서 12개국이 있습니다. 거기에 환율에 따라 변동하긴 하지만 대체로 규모가 비슷 비슷한 호주, 멕시코, 한국 3개국을 합쳐서 총 15개국이 됩니다. 조금 과장해서 인구가 5천만,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는 되어야 나라다운 나라아니냐고 우겨본다면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한 나라는 G7에서 카나다가 빠지고 우리나라가 낀 7개국 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가 그야말로 피땀 흘려 노력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거기에 또 하나 있습니다. 2011년은 우리나라가 무역규모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한 역사적인 해입니다. 2011년 우리나라 무역 규모는 수출 5578억 달러, 수입 5245억 달러로 총 1조 823억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나라는 1962년 세계 수출 순위 104위에서 2011년 7위로, 그 사이 무역 순위는 65위에서 9위로 성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역규모로 볼 때 세계에서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태리에 이어 우리 나라가 아홉번째가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 나라가 챙겨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문화와 예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이 무역 규모 세계 9위라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것은 사실 좋은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선진국들이 사실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산업에 너무 치중한 탓에 그렇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금융을 주도하는 Wall Street에 문제가 생기자 실물경제로 불길이 옮겨 붙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럽은 사회보장이 너무 잘 된 탓에 일 안하는 풍조가 생겨서 나라 곳간에 문제가 생겨 오늘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조업의 경쟁력을 이만큼 키워 온 우리 나라로서는 이제 제조업의 지속적 발전과 더불어 나라의 교양 수준도 높여 가야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와 예술이 풍성해진다는 것은 나라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과 통합니다. 한 나라의 품격이 올라가면 경제적으로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문화와 예술이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이 없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여 나라의 품격이 올라가면 나라의 경쟁력도 올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일단,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 창의성이 높아집니다.

 

   창의성은 21세기의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환경이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기업은 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틀에 박힌, 전형적인 접근법으로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전혀 다른,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이야말로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술과 문화가 풍성해질수록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두번째는 나라의 문화와 예술 수준이 높아지면 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집니다.

 

   우리가 굳이 우리 상품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세계인의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상품의 경쟁력이 높아져서 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지기도 하지만 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서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경쟁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림의 떡은 보기만 좋을 뿐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림의 떡은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질도 높여주는 것을 의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문화와 예술 자체가 다양한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은 두터운 문화예술적 기반을 토대로 ’창의산업’이라는 것을 발전시키고 있고 금융과 함께 영국의 경제발전을 이끄는 유망산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창의산업이란 창의성이 핵심경쟁력인 산업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영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음악, 미술, 공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K-pop 이라고 하는 무형의 상품이 세계 시장에서 널리 인기를 누리고 있듯이 창의산업에서 앞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튼튼한 제조업 경쟁력이 문화와 예술을 만나 더욱 더 우리 경제를 꽃피우는 21세기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오종남 / 서울대 교수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가 먹고 사는 법  (0) 2012.01.13
마음을 움직이는 '3의 법칙’   (0) 2012.01.11
잘난 체하는 참새   (0) 2012.01.06
개구리가 살아난 이유  (0) 2012.01.04
가장 중요한 단어  (0) 201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