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3의 법칙’
길거리에서 세 명이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잠시 후 지나가던 대부분의 행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일까?’ 하고 같은 곳을 응시한다.
맨 처음 한 명이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현상이 벌어진다.
사회심리학에서 흔히 행해지는 동조 실험의 한 장면이다.
한두 명으로는 꿈쩍도 않던 대중이 움직이는 시점이 '3’부터인 것이다.
3 이란 숫자가 지닌 묘한 매력이다.
3 이란 숫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과 아주 가까운 숫자임에 틀림없다.
환웅이 거느린 3명의 신(풍백, 우사, 운사)과 삼부인(청동검, 청동방울, 청동거울), 새 생명을 잉태하는 삼신할미까지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숫자 3 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신)와 3명의 대천사(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에서부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부활하는 날도 3일째이고, 단테의 '신곡’ 또한 지옥, 연옥, 천국의 3가지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숫자 3 이 발휘하는 마법은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유발하는 중요한 변환점이 된다는 점이다.
한두 명으로는 기미도 없던 일에 세 명이 한마음이 돼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중이 따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고, 한비자는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라 했다.
즉 세 명이 길을 가다 보면 다른 사람을 배우고 따라할 수도 있고, 또한 세 명이 있지도 않은 호랑이가 시장에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믿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3의 법칙’ 이란 적어도 세 사람이 움직이면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마련이고 이것이 합쳐지면 전체의 상황을 바꾸는 놀라운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에서 트위터,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소통이 한결 쉬워졌다.
숫자 3의 마법이 발현되기도 훨씬 쉬워졌다.
그 때문에 한순간에 뜨기도 하고 반대로 한순간에 매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사회가 되었다.
문제는 진솔함과 긍정의 에너지다.
진솔한 고민을 담아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우리 사회를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드는 신(新)공감의 시대를 열어가면 어떨까.
최원용의 <통일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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