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철새보다 못한 인간들

뚜르(Tours) 2012. 10. 30. 08:38

흔히들 곰이 우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후각이 예민하며 움직임도 지혜롭다고 한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을 ‘곰 같다’고 하니 곰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박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박쥐가 날 수 있는 것은 앞다리가 날개로 진화했기 때문인데
날개에 손가락뼈 다섯 개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데 성공한 후부터 진화가 중단된 것 같다.
그런데 박쥐는 박쥐일 뿐 자기 편의대로 새인 척 하거나 짐승인 척 하지는 않는다.
`박쥐 같은 인간`이란 표현은 박쥐를 모욕하는 말이다.

캐나다 북부에 서식하는 제비갈매기의 일종은 해마다 북극 근처의 집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극대륙에 다녀오는 엄청난 여행을 한다.
거리를 재보면 줄잡아 4만킬로미터가 넘는다.

미대륙에만 살며 꽃의 꿀을 빨아먹는, 1원짜리 동전 크기만한 벌새도,
매년 무려 8백5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왕복한다.

미국 동부지역에 폭넓게 분포하는 황제나비는 최대 2천5백 킬로미터를 날아
멕시코의 고산지대에서 겨울을 나며 알을 낳는다.
어미를 여의고 태어난 어린 나비들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돌아간다는 말인가?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나가 살다가 정확하게 자기가 태어난 강을 찾아오는 연어들은
고향의 강물에 석여 있는 냄새를 기억하고 찾아온다.

한국에는 강과 바다, 산과 들이 아름다워 온갖 새들이 서식한다.
사계절을 함께 하는 텃새도 많지만 철 따라 찾아오는 겨울새, 여름새, 나그네새도 많다.


두루미들은 겨울이 오면 자신들에게 적합한 환경을 찾아
시베리아의 헤이룽 강 우수리 지방에서 남쪽으로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이들은 한반도에 5개월 정도 머물다 3월 하순부터 다시 북상한다.
추운 북녘에서 활동하고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번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숙명이요, 자연의 섭리다.

흔히들 지조 없는 정치인을 철새에 비유하곤 한다.
철새의 이동성을 빗대어 그러는데
이동성은 철새의 본능과 자아실현의 문제이다.
그걸 인간에 빗대어 비하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10년간 살았던 정든 집도 이사가게 마련이고
또 다니던 직장을 옮길 수도 있다.
한 종교를 믿다가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정치적 신념을 근본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종교적 신념처럼 불변의 것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
정치적 소신과 철학에 따라 정당을 바꾸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것이고
선진민주국가에서 정치인들의 정당이동이 존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선거때만 되면 겉으로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내심으로는 주판알을 튕기면서 보따리를 싸는 정치인들이 적지않다는데 있다.
`철새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철새보다 못한 정치인’들 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박쥐와 철새를 욕되게 하지말았으면 좋겠다.

/박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