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오디션과 컴퍼티션의 차이

뚜르(Tours) 2013. 4. 28. 00:15

 

A는 몇 년 전만 해도 세계가 주목하던 피아니스트였다.
줄리아드 음대를 수석 졸업했으며 세계의 기라성 같은 신예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빛나는 존재였다.
수많은 국제 콩쿠르를 휩쓸었고 그때마다 그의 신들린 듯한 열 손가락에 찬탄이 쏟아졌다.
재미교포인 그는 ’미국 한인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A에 대한 소식이 뚝 끊겼다.
음대를 졸업하면 세계를 순회하며 연주하고 음반을 내는 스타 피아니스트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최근 수소문해 알아본 바로는 학생들을 상대로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실망스러운 이야기였다.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A만큼이나 A의 어머니가 유명했다.
아이를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한 그녀의 불같은 열정 때문이었다.
A가 가는 곳마다 어머니라는 그림자가 붙어 있었다.
A가 콩쿠르에서 1등을 하거나 수석 입학, 수석 졸업 같은 경사를 맞을 때마다 언론사에 이 사실을 알린 사람도 어머니였다. 한번은 콩쿠르에서 A가 실수로 피아노 건반 몇 개를 잘못 친 적이 있다.
그 연주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이가 무대 뒤로 오자마자 모질게 뺨을 후려갈겼다.
미국에 오래 산 한인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이야기다.

내로라하는 국제 콩쿠르의 트로피를 쓸어 담던 A는 왜 레슨 교사에 머물고 있을까.
컴퍼티션(competition·경연대회)에는 강했지만 오디션(audition·선발대회)에 약했기 때문이다.
컴퍼티션은 지정곡을 얼마나 정확히 연주하느냐, 다시 말해 누가 정답을 많이 맞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오디션은 어떤 배역 또는 역할에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를 보는 자리다.
요즘 TV를 켜기만 하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사실상 죄다 ’컴퍼티션 프로그램’이다.
누가 더 지정곡을 잘 부르나, 누가 더 높은 음까지 올라가는가가 주된 관심사다.

컴퍼티션 우승자는 최고의 테크니션(technician·기술자)일 수는 있지만
자동으로 최고의 아티스트(artist·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그러나 테크니션에 과도하게 열광한다.
누가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느냐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경쟁에서 1등을 하느냐에만 주목한다.
그 결과 무수한 테크니션들이 주목을 받았다가 아티스트가 되는 데는 실패한다.
A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성악과를 졸업한 학생이 외국에 유학 가면 서양 성악과 졸업생들을 얕잡아보게 된다고 한다.
성량이 별로 크지 않고 고음 처리도 매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성악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자주 우승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세계적인 오페라의 배역을 놓고 벌이는 오디션에서 한국인이 발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양 오페라의 인문학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적고, 심지어 가사 뜻도 잘 모르는 데다가 무조건 큰소리로 초고음을 낼 줄 알아야 좋은 성악가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오페라 오디션에서는 가창력이 좀 못하더라도 배역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가사에 맞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한국이 오래전부터 세계 수학경시대회와 과학경시대회를 휩쓸어 왔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고교 시절 국민윤리 시간에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했지?"라는 선생님 물음에
"소중한 존재입니다"라고 대답했다가, "인마, 존엄한. 존엄한 존재라고 몇 번 얘기했어?"라는 불호령과 함께 ’빳다’를 맞았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었다.
우습기만 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가르쳐 준 대로 답해야만 정답이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다르게 대답하면 무조건 틀리고 야단을 맞는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의 목표는 오디션이 아니라 컴퍼티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배운 아이가 자라서 서게 될 무대는 컴퍼티션이 아니라 오디션이다.
오디션에서는 자신만의 생각과 표현이 있어야 한다.
죽어라 정답만 달달 외워서는 백전백패다.
어느 기업에서 초·중·고 시절 내내 1등을 하고 일류대를 졸업한 신입사원들에게
"우리 회사가 향후 10년간 해볼 만한 신규 사업 기획서를 써보라"고 했더니
다들 네이버에서 ’신규 사업’을 검색하고 있더라는, 웃지 못할 실화가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떼로 나와 인형처럼 춤추는 일본 아이돌 그룹을 ’정답’으로 삼고 본뜬 이른바 걸 그룹들과
아무도 그렇게 춤추지 않지만 자기만의 춤과 연출을 고집해 온 싸이는 그 태생부터 다르다.
지금도 어느 채널을 트나 어슷비슷한 아이돌 그룹들이 정답을 베끼느라고 정신이 없다.
이들도 피아니스트 A처럼 콩쿠르를 휩쓸 수는 있다.
그러나 문화사(史)에 남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컬처 파워가 될 수 있을까. 몹시 회의적이다.


한현우의 <팝 컬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