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서울)지하철 합정역 근처”라고 답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 홍익대구나”라고 반응한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클럽과 술집이 많은 홍익대 주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비교적 조용한 주택가다.
나는 1년 전 한국에 온 뒤 쭉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동안 집 근처 골목을 자주 다니며 동네 분위기를 즐기고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가까워졌다.
우리 동네는 정을 느낄 수 있는 친절한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골목길을 따라 ‘오븐과 주전자’라는 빵집에 들른다.
김 서린 유리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빵 냄새가 풍겨오는 그곳에서 빵을 고르고
젊은 주인 부부의 웨딩사진이 놓여 있는 카운터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 퇴근길에는 같은 골목에 있는 고깃집을 지나는데, 고기 굽는 맛있는 냄새와 함께 ‘딸깍딸깍’ 젓가락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깃집 주인아줌마, 아저씨는 월급 나오는 날이나 가끔 찾아가는 나 같은 손님에게도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때마다 반가움은 더해간다.
내 단골집 중에는 ‘문턱 없는 밥집’도 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유기농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정해진 밥값이 없고 자기 형편껏 돈을내도 돼서 나는 이 식당에 매주 들르는데,
온돌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마지막에 숭늉을 먹으면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다.
그곳에선 누구나 서로서로 눈인사를 하고 소소한 안부를 묻는 등 일상을 나눈다.
그리고 늦은 퇴근길에 들르면, 바빠도 미소를 지으면서 내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들이 계시는 ‘마포만두’도 빼놓을 수 없다.
만두 솥의 김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었던 내 얼굴을 녹일 때면 나는 이 동네에서 이방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서울에 오기 전 베를린에 살았다.
독일에서는 ‘베를린은 마을’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도시지만 자기 마을처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실 서울에 왔던 처음에는,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살면 살수록 동네생활을 즐기게 돼 도시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이곳도 결국 ‘마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1년 동안 우리 동네에 살면서 변화도 볼 수 있었다.
합정역 바로 앞에 고층빌딩 및 쇼핑몰이 생기는 동안 작은 가게 몇 군데가 없어졌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는 옛날 동네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재개발된다’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놀라웠다.
원래 우리 집 1층엔 마트가 있었다.
나는 그 가게에서 맥주 두부 같은 것을 사거나 가게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곤 했다.
늦은 시간엔 주인아저씨가 누가 물건을 가져가도 모를 정도로 카운터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게 앞 자판기가 사라졌다.
며칠 후에는 가게문이 닫혔다.
물론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살 순 있지만 항상 동네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게임도 하던 시끌벅적한 1층 가게와 그곳을 지키던 아저씨를 잊기 어렵다.
‘문턱 없는 밥집’도 얼마 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식당은 문을 닫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아마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그 삶의 뿌리가 되는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동네가 변하더라도 밥집 직원의 안부 인사, 만둣집 아줌마의 미소, 마트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안 코이츤베악 / 주한 독일문화원 직원 · 베를린자유대 연극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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