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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덕 여론독자부 차장
윤창중 전(前) 청와대 대변인이 재미교포 인턴 여성을 성추행한 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추행 수준이 '엉덩이 꽉'이냐, '허리 툭'이냐, 속옷을 입었느냐, 벗었느냐를 두고 진실 공방도 뜨겁다.
그런데 이번 사건엔 '불편한 진실'이 하나 더 있다. 당장의 의문들을 열거해보자. 왜 미국 방문 중인 정부 대표단 고위 공무원들에게는 1대1로 비서직을 수행할 인턴이 필요했나. 그 인턴들은 왜 대부분 갓 스물이 넘은 여성들인가. 왜 고위 공무원의 서류 가방을 들어주고, 자동차 문까지 열어줄까. 의전이고 관행이라는데, 다른 나라도 고위 공무원이라면 이렇듯 하늘처럼 떠받드는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주미 대사관은 이번 행사를 위해 인턴 사원 30여명을 채용했다. 외교 무대에 참여한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되니 인턴 모집은 무급인 데도 희망자가 넘쳐난다. 경쟁률이 보통 4대1, 이번엔 10대1이나 됐단다.
사정이 이러하니 재외공관에서는 인턴 사원을 종 부리듯 한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방미 때 워싱턴 영사관에서 인턴을 한 A씨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새벽부터 일용직 노동자처럼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호출이 오면 뛰어나간다. 잠은 3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A씨는 "그땐 고위 공무원 수행하며 외교 현장에 나가는 인턴들이 부러웠는데 이번 사건 보니 부러워할 일 아니더라. 함께 내근조에 있던 동료 인턴은 외모도 괜찮고 영어도 유창했는데 한국 고위직에 있던 그 애 아버지가 수행 인턴은 절대 못 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며 씁쓸해했다. 한국에서 정치인들 한번 다녀가면 수행했던 인턴들 사이 벌어진 '불미스러운' 얘기들이 교포 사회에 공공연히 떠돌았다 하니, '윤창중 사건'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분개할 일도 아니다. 직장 상사가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 들통 나자 '그 애가 일을 못해 혼낸 뒤 딸 같은 마음에 위로해주려 술을 샀다' '술 취해 실수한 모양인데 기억나지 않는다' 식의 지극히 상투적인 해명 말이다. '남자가 그럴 수 있지'라는 사회적 묵인 또한 여전히 작동한다. 하필 그 사고가 새 대통령의 첫 외교 무대에서 터진 바람에 전국적으로 공분하는 것뿐이다.
대기업 임원이 라면이 덜 익었다며 항공사 여성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은 또 어떤가. 권력관계에 놓인 나이 어린 여성, 서비스 제일주의를 강요당하는 직종의 여성은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가부장적 폭력 행위란 점에서 윤창중 사건과 본질적으로 같다.
'농담 잘못하면 3000만원'이란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범죄 둔감시대에 사는지도 모른다. "성폭행으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웬 난리법석이냐"는 말이 '같은' 여성의 입에서 나올 만큼. 종북주의자들의 음모라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있고, '엉덩이 한번 만진 걸 신고해 나라 망신 시켰다'며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악플이 쏟아지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몰상식이 우리 사회에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며, 고위 공직자의 해외 원정 성추행까지 등장한 근본 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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