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청춘이 바로 열아홉 살의 순정, 바로 20대의 젊은 청춘이 아니겠습니까!
말똥이 내리막길을 굴러만 가도 그저 우습기만 하고,
누가 한마디의 이상한 말만 걸어와도 얼굴이 마냥 붉혀지기만 하는 그 시절이 바로 젊음: 청춘입니다.
그런 청춘에는 상하, 전후, 좌우의 방향이 제각각 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가 하면, 이런 사람도 되고 싶고, 저런 사람도 되고 싶습니다.
장관도 부럽지 않고, 대통령도 부럽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다할 수 있는 자신감이 팍팍 솟아나는 때입니다.
참으로 할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때가 청춘시절이 아닙니까!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하면, 저것을 못하고, 저것을 하면, 이것을 못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 그 어느 하나 해보지도 못한 채 청춘은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여러분들은 젊었을 때 최소한 이 3가지만은 실천하여 보기를 바랍니다.
감성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사람의 본성은 옛 그대로입니다.
먼저 순수한 마음에서 진실한 ‘사랑을 해 보라’는 말입니다.
순수한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돈도 필요 없고, 명예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둘이서 함께 있기만 해도 마냥 좋기만 하고, 기쁘기만 합니다.
금새 만나고 뒤돌아서도 또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가 하면, 만난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은 이미 들뜨기 시작하고, 몸은 그 집 앞을 서성이게 됩니다.
만남은 순간으로 여겨지나, 헤어짐은 영원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에는 순간과 영원이 언제나 하나로 있기를 바랍니다.
순수한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만이 보편적 인류애를 펼칠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몸이 부셔지도록 ‘공부(집념)를 해 보라’는 말입니다.
대학 4년이나 젊은 시절의 그 몇 년은 인생 전체에서 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바로 인생 전체가 걸린 귀한 시간들입니다.
그러니 눈을 딱 감고 한가지 일에만 집념하여 보십시오.
그것이 귀한 것이라고 하든, 천한 것이라고 하든 거기에는 전혀 상관하지 마십시오.
귀하다 혹은 천하다는 것은 그냥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사실의 본성은 결코 그런 판단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오직 그 자신의 의지에만 달려있습니다.
그런 의지가 얼마나 확고하냐에 따라 비로소 귀하게도 되고, 천하게도 됩니다.
참으로 세상은 닫혀져 있지 않고, 열어져 있습니다.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이게 마련입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린 것이요”하는 말은 참입니다.
우리에게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전체로서 한가지 일에 청춘을 다할 때, 그 젊음은 이미 내일의 자기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셋째는 ‘최악의 삶(고생)을 살아 보라’는 말입니다.
그 곳이 캄캄한 감옥이라도 좋고, 지옥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한 지옥이나 감옥에는 앞뒤가 없습니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곳이 모두 한곳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품과 인격 이전에 삶의 냉혹한 현실이 앞서 있습니다.
성욕은 배 곱음에 비하면 그저 사치스러울 뿐입니다.
굶주림의 고통 없이는 서푼짜리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젊을 때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도 한다’는 말은 우리 귀에 익은 격언입니다.
이 사랑과 공부(집념), 그리고 감옥생활은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청춘을 어렵게 합니다.
사랑을 할러니 공부를 못하게 되고, 공부를 할러니 밑바닥의 삶을 놓치기가 일쑤이지요.
그래서 서로의 역방향으로 향하는 이 3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갈 때, 비로소 청춘은 못살아도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을 전체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공간의 물리학에서는 상하, 전후, 좌우의 세 방향, 어디로나 다 갈 수 있으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가 엄지를 펴 위로 올리고, 검지를 펴 앞으로 내밀고 나서 중지를 펴 오른편으로 내민다면, 그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제각기 다른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이 방향들은, 그러나 크게 생각하면, 그 모두가 나의 주먹을 떠나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여러분들 자신이 결단할 때, 청춘은 4차원의 시간으로서 이미 3차원의 인생전체를 이끌어 가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묘미입니다.
백승균 / 넷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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