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단상
아주 기억조차 희미한 옛날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지.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기도 했지.
요란한 천둥소리와 빗소리에
조그만 새가슴 끌어안고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있었지.
무엇인지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갔는데
난 무서워서 방에 엎드려 있었어.
잠시 뒤에 엉엉 우는 엄마 울음 소리에
엉겁결에 나도 울며 밖으로 나갔지.
엄마는 마당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어.
내리는 비에 담이 무너지고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장독을 덮쳐
빗물에 섞여 간장과 된장이 마당을 덮고 있었지.
전쟁 중에 열아홉 살 큰아들을 앞서 보내고
서울을 떠나 피난살이 하던 고된 삶에 겨워
깨어진 장독을 보고 울던 우리 엄마.
천둥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날이면
세월이 많이도 흘렀건만 난 엄마를 생각한다.
아들의 기도 속에서 맑은 웃음을 웃는 엄마
좋은 곳에서 앞서 보냈던 큰아들과 만나
열심히 사는 나를 보고 웃는가 보다.
201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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