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or(莊園)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뚜르(Tours) 2013. 8. 11. 23:51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조기연 마르티노

 

어떤 사람이 제 그림자의 모습에 두려워하고 또 발자취에 마음이 상해 그는 둘 다를 떼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 생각난 방법은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 달렸다. 그러나 그가 발을 내려놓는 매 순간 다른 발자국이 생기고, 그의 그림자는 조금도 어렵지 않게 그를 따라 잡았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가 충분히 빨리 달리지 아니했던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빨리 달려 쉬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그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는 단순히 그늘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그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또 앉아 조용히 머물러 있다면 더 이상 발자국은 생기지 않을 것임을 알지 못했다.” 토마스 머튼의 장자의 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묵상해 볼만한 이야기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정년퇴직 후에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지 하면서 꿈꿨던 것들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 수집한 LP 레코드판을 모두 들어보기, 불후의 영화 다시 보기, 정처 없이 여행하기, 외딴곳에서 은둔생활하기, 이런 것들이 제가 꿈꿨던 노후의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 해 본 것이 없습니다.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분주(奔走)하기만 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쉴 수 없이 얹히는 일들로 휴가 한 번 변변히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쉼이 절실한데, 용단을 내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쉼은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쉼을 일하기 위한 재충전의 수단으로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아(自我)를 찾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한자(漢字)로 쉴 휴()자는 나무 그늘 아래 사람이 자리한 형상입니다. 그러하기에 쉼은 자연 속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의미로 쉼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이미 쉼을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들께서는 성체조배와 영성체를 통해 영혼과 육신이 주님 안에서 안식(安息)을 얻고 힘을 얻고 있으니, 굳이 휴가를 다녀오지 않아도 늘 생기 있게 살아가시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하시며 분주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 안에 머물고 쉬라하십니다.

 

지금 저희 본당에서는 쉬는 교우 회두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성사(聖事)를 보지 않고 세상 속에서 쉬고 있는 그분들을 성당으로 모셔와 주님 안에서 쉬게 하고, 그래서 영혼에 생기를 얻고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쉬는 교우들께서는 피치 못할 사유로 주님을 떠나 세상 속에 머물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을 위해 본당 모든 교우들이 발 벗고 나설 때입니다.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를 바치고, 그분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겸손하게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그분들이 중대한 결심을 하도록, 그래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주님 안에 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쉬는 교우 회두 운동에 동참합시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1-3)

 

<이 글은 반포성당 소식지 '그리스도왕'(2013년 8월 vol.22)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