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나라에서 같은 산을 수십 번, 수백 번씩 오른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두 산을 수십 번, 수백 번씩 오르고 있다.
중년에는 구미에 2년간 살면서 금오산(977m)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올랐으니 백 번 가까이 오른 셈이다.
그리고 그후로는 산본에 살면서 수리산(475m)을 셀 수도 없이(아마도 수백번은) 오르고 있다.
나는 왠만한 산들은 천천히 내 페이스를 지키며 정상까지 쉬지 않고 오른다.
이유가 있다.
특히 겨울철이나 봄 철 꽃가루가 날릴 때는 오르다가 쉴라치면 기침이 나온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쉬지않고 천천히 정상까지 올랐는데 이제는 버릇이 되고 말았다.
오르다 보면 뒤에서 오던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들 가는데 정상에 오를 때 보면 대개는 내가 먼저 오르는 편이다.
그들은 도중에 쉬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산은 공통점이 있다.
두 산이 다 같이 크게 높지는 않지만 가파르다는 것이다.
정상에 이를 때까지 계속 올라가야만 한다.
평지나 능선이 없이.
오늘도 수리산을 올랐다.
정상 가까이 계단을 오르는데 어떤 부부가 내려오면서 남편이 불만스럽게 토하는 말이 내 귀를 스쳤다.
"올라갈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올 길은 못된다"
사실이지 요즘 산 마다 (돈을 들여) 계단을 깔아 놨는데
(산은 보호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은 참으로 불편하고 힘이 든다.
지난 번 강화도 마니산도 그랬다.
이 남편의 불평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부부를 지나보내고서 계단만 내려다 보며 숨을 헐떡거리고 올라가는데 내 위쪽에서
"좋은 날씨입니다."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교회나 장사 선전물 돌리는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가 보다고 지레 짐작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외다리에 목발을 짚은 젊은이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방금 두 다리를 멀쩡히 가진 사람이 불평을 하면서 내려 간 이 길을 외다리에 목발을 짚고 내려오다니....
마흔 살 쯤 되는 친구였는데 얼굴은 천사같은 미소로 환했다.
이렇게도 다를 수가......
요즘 산을 오르다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산을 오르고 있는 건지, 내려 오기 위해 올라가고 있는 건지>를.
’많이 올라봤으니 이제 내려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매번 산에 갈 때마다 ’오른다(登山)’고 하나? ’내려가는(下山) 연습하러 간다’고 해야지.
’한쪽 다리가 없는 친구도 잘 내려 가는 길을, 두 다리 멀쩡한 내가 내려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건 소가 웃을 일이다.
지난 번 히말라야에 갔을 때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4130m)에서 하산을 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쏜살같이(?) 내려갔다.
올라갈 때는 천천히 걸어서 잘도 올랐는데 내려간다고 하니 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사람은 내려오는 사흘 동안 무척 고생을 했다.
순간적으로 오버 패이스를 한 것이다.
그것을 똑똑히 지켜 본 내가 마지막 날 똑 같은 실수를 했다.
고도가 1500m 정도로 지대도 낮았고 남은 거리와 시간도 1시간 가량이라
’체력도 시험해 볼 겸 마지막 스퍼트를 내 보자’고 앞에 가던 사람들을 하나 둘 제치고 일착으로 목적지에 도착을 했겠다.
도착하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 지며 서 있지를 못하겠고 어디 누울 곳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 거렸으니...
소가 웃어도 할 수 없다.
등산(登山)을 연습하고 훈련했듯이 하산(下山)도 연습해야 한다.
하산(下山)이 쉽지 않다는 걸 이번 히말라야산행(山行)에서 온몸으로 체험을 했다.
다리 하나가 없는 친구가 목발을 짚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험한 계단길을 내려오기까지
그는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산도 인생도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산은 오르면 누가 말 하지 않아도 내려올 때는 내려오건만
인생은 그렇지를 않아서 언제 내려가야하는지, 어떻게 내려가야하는지를 잘 알지를 못하겠으니.....
그리고 말이다.
알면(知) 뭣 하나?
실행(行)을 해야지.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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