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부모님은 안녕하십니까?

뚜르(Tours) 2014. 2. 6. 20:57

 

몇 년 전의 일이다.

매일같이 우리 동네 육교 밑에서 남루한 옷차림에 커다란 함지박 하나 놓고 야채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는데 차가 오지 않아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자제분이 없으세요?" 하고 묻자 할머니는 대답이 없으셨다.

나는 행여 내가 한 말을 못 들으셨나 싶어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할머니는 힐긋 나를 보더니 왜 남의 일에 그렇게 참견하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말을 하셨다.

"자식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우리 아들 미국으로 유학 가서 거기서 살아. 1년에 한두 번 연락이 왔었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끊겼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몹시 당황했다.

괜히 물어봤나 후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머리가 터지도록 배우고 직위가 높으면 뭐하나.

최고 학부를 나와 엘리트가 된 자식이 80세가 넘은 노부모를 길거리에 버려두고 외국에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해 연말 우리 동네 마을금고에서 십시일반 쌀을 모아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행사가 떠올랐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마을금고에 가서 그 할머니를 좀 도와달라고 제의했으나 규정상 아들이 있는 사람은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평소 친분이 있는 이사장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한 뒤 쌀 20kg을 전달받아 그 할머니에게 전해주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누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나가 보니 뜻밖에도 그 할머니가 서 계셨다.

"집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찾으셨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내 자식보다 고마운 사람을 내가 어찌 잊겠느냐"며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우리 집을 찾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수건에 곱게 싼 무엇인가를 내 손에 쥐여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은 계란 두 알이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고 값진 선물에 나는 울컥하는 감동과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요즘에도 추운 날이면 그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 뒤 한동안 그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수개월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에게 자식은 무엇이고, 이웃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며칠 후면 우리의 고유 명절 설이다.

부모님을 위해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뵙자.

이것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도리요, 효도하는 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자녀들에게 쏟은 정성 반만이라도 부모님에게 나누어 드리자. 지금은 젊지만 언젠가는 나도 늙게 되면 똑같이 자녀들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학록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