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후츠파 대화법

뚜르(Tours) 2014. 4. 7. 11:25

JTBC에서 하는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를 재미있게 본다.
가부장적 태도의 전형인 이순재는 아침마다 식구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한다.
다른 식구들은 한 마디도 못한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지만 식구들 표정을 보면 죽음 그 자체다.
괴롭지만 어른이고 윗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듣는다.
부인은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수시로 그만하라고 옆구리를 찌른다.
결국 부인으로부터 이혼하자는 얘기를 듣고 만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이다.

실제 큰 조직에서 일할 때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한 번은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도 윗사람 설교가 끝나지 않는거다.
다들 아무 얘기를 안 하길래 제일 졸병인 내가 "사장님, 밥을 먹고 하면 어떨까요?" 라고 얘기를 했다.
상사는 웃으면서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라면서 회의를 끝냈다.
다들 좋아했다.
근데 나중에 전무가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며 충고를 했다.
기가 막혔다.
못할 말 한 것도 아니고, 식사시간 지났으니 밥을 먹고 하자는 게 못할 말인가?
그런 말도 못하는 조직에서 무슨 영양가 있는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무슨 노예인가, 의견이 없는 꼭두각시인가?

관료적인 조직일 수록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금기시 되는 말이나 영역이 존재한다.
할 말을 못하니 사람들 표정은 늘 어둡고 뭔가를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쓸데없이 엄숙하고 경건하다.
숨이 막힌다.
이런 곳에서는 개인도 조직도 시든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의견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 조직은 어떤가?

유대인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 덕분이다.
후츠파 정신이다.
자유롭게 도전적으로 질문하는 정신이란 뜻이다.
"유대인 이야기" 란 책을 쓴 홍익희 선생의 설명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얌전하거나 점잖은 것이 덕이 아니다.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게 미덕이다.
질문을 많이 할수록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며,
배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각도로 살펴 창의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설명하고 아이들은 조용히 듣는 학교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이스라엘 교육이 한국과 다른 점은 일방적 지식 전수보다 대화에 의해 학생이 원리를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인 대화법이다.
이렇게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질문하는 태도를 ’후츠파’라고 한다.

후츠파는 한국인의 정(情)처럼 유대 민족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다.
주제넘은, 뻔뻔한, 오만한 같은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도전적인, 놀라운 용기, 배짱 등 긍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이스라엘 대학에선 교수든 학생이든 서로 의견이 다를 땐 몇 시간이고 끝장 토론을 벌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자기주장을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후츠파 정신은 유대 민족의 창조성을 키우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후츠파 정신이 에디슨과 아인슈타인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는 물론 오늘날 IT업계와 벤처업계를 리드하는 유대인 경영자들을 길러냈다.
실제 이스라엘은 후츠파 정신에 기반한 벤처창업이 매우 활발한 나라이다.
나스닥 상장기업 중 미국기업을 제외한 기업 중 40%가 이스라엘기업이며 세계 벤처캐피탈의 31%가 여기에 투자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주요대학과 연구소 4~5곳이 1년간 특허료로만 벌어들이는 수익이 우리 돈으로 2조3천억 원에 달한다.
미국에는 이스라엘보다 의대가 30배 많다.
하지만 인구 710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이 세계 바이오 벤처의 70%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후츠파 정신의 저력이다.

반대의견이 없는 조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표출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
가와시마 기효시 혼다 전 사장은 퇴임의 변을 이렇게 말했다.
"최근 2-3년간 내가 말한 사항들이 사내에서 8할이나 통과됐습니다.
6할이 넘으면 원맨 경영의 폐해가 나타나는 위험신호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혼다가 위험하다는 얘기 아닌가요?
제가 계속 사장 자리에 있으면 우리회사는 직선적으로 밖에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퇴임을 결정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관리자 중 70%는 보스의 일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피드백이나 충고를 하지 않는다.
통하지 않는 조직일수록 상사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일사분란하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물론 속으로는 "그게 되겠어"란 생각을 한다.
중원의 고수들은 늘 반대의견을 받아들인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뭐가 사실인지를 말하는 반항적이고, 고집 센, 참을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을 항상 고대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사람들이 많고 이들을 참아낼 인내가 있다면 그 기업에 한계는 없다."
IBM 창업자 토마스 왓슨의 말이다.

"나는 반대자들에게 늘 감사한다.
조직은 리더가 가진 꿈과 그릇만큼 자란다.
큰 그릇은 많은 걸 담을 수 있다.
나와 동질적인 것,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조직은 성장한다."
인텔의 전 회장 앤드류 그로브의 말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못 참는가?
그렇다면 인재들은 떠나고, 반대의견은 사라질 것이다.
물론 당신 조직도 사라진다.
사람은 반대의견과 불편함을 통해 성장한다.
세계적인 화장품회사 로레알의 핵심 철학 중 하나는 건강한 갈등조장 (Constructive confrontation)이다.


                                   한근태 / 컨설턴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