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자오위핑趙玉平 교수가 말하는 ’삼국지 리더십’ (1)

뚜르(Tours) 2014. 4. 5. 06:02

중국 삼국시대 영웅호걸을 다룬 삼국지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최고 경영자들이 가장 열독하는 도서로서 종종 거론되는 이유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세술과 리더십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국영 채널 CCTV 인기 인문학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논어, 사기 등 중국 고전에 대한 강좌로 매일 밤 방영된다)’에서 삼국지 강의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베이징에 있는 유뎬(郵電) 대학 관리학과(경영학과에 해당) 자오위핑(趙玉平) 교수도
백가강단의 삼국지 강의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 중 하나다.
백가강단은 2001년부터 13년째 방송하는 인문학 강좌.

자오위핑 교수는 지난 10년간 백가강단을 비롯해 차이나텔레콤, 중국노키아그룹과 칭화대, 푸단대 등에서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펼쳐 2009년 중국 기자들로부터 ’대륙 10대 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텔레비전 강의를 바탕으로 쓴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과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는 국내에도 출간됐다.

사마의, 기회 잡을 때까지 묵묵히 참아

조비(조조의 아들이자 위나라의 초대 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47세 사마의는
조진(조조의 조카)과 나란히 어린 황제 조예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중책을 맡았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대신들 간 권력 투쟁이 극심했고, 이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진은 함께 서쪽 전선을 지키던 사마의를 줄곧 견제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조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심지어 자신이 세운 공을 모조리 조진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예순이 되었을 때 사마의는 황제 조예의 특별 대우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는 호쾌한 기개와 포부를 드러내는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 ’고성귀로 대죄무양(告成歸老 待罪舞陽)’은 의미심장하다.
위업을 이루고 고향에 돌아가 처벌을 기다린다, 즉 권력에 뜻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득의양양하고 술에 취해 야심의 일부를 드러내더라도 마지막 순간 슬그머니 감춰버리는 처세술은
사마의가 평생에 걸쳐 지켜온 것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사마의는 라이벌 격인 제갈량보다 언제나 한 수 뒤처지는 상대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이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시기와 비판을 참고 버티는 탁월한 인내심을 갖고 있었다.

사마의가 조조를 비롯해 40년간 조씨 집안 4대(代)를 섬기며 훗날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처세술 덕분이었다.

지금처럼 정년퇴직이 보장되지 않은 조직 생활에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일종의 진리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기회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참으며 73세까지 천수를 누리다 간 사마의가
어쩌면 삼국지연의를 통틀어 가장 강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조조, 부하에 냉혹했지만 융통성도 발휘

그렇다면 ’난세의 교활한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조조는 어떨까.
그는 냉혹했지만, 부하 직원을 다룰 때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리더였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무찌른 이후 조조는 구리 화로에 불을 피워 원소와 내통한 자신의 부하들 명단을 모조리 불태웠다. "원소 세력은 참으로 강해서 나조차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하물며 다른 이는 어땠겠는가."
제갈량이 단 한 번 실수를 저지른 마속을 눈물을 흘리며 베었던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그는 올해 초 중국에서 조조의 리더십과 처세술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내년 상반기엔 국내에도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오늘날 우리가 조조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성품이 ’온화하다’는 자질은 결코 리더의 필수 성공 조건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가 성공했을까요?
첫째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각,
둘째 결정적인 시기에 흔들리지 않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과감성,
셋째 포부와 기개가 필요합니다.
조조에게선 이 세 가지 자질을 전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조의 밑에는 하후돈이라는 용감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하후돈은 용맹하기 그지없어서 큰 전쟁에서 수차례 승리를 이끌었는데, 조조는 하후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장점은 용감한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장점으로 인해 실패할 수 있다.’
불같은 성격의 하후돈은 여포 정벌에 나섰다가 화살에 맞아 애꾸눈이 됩니다.
이처럼 조조는 항상 먼 앞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조에게서 배울 게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마오쩌둥은 “조조는 세월을 뛰어넘는 영웅”이라고 했고, 최근엔 국내에서도 조조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저서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조조의 군대가 적벽대전에서 유비·손권 연합군에게 대패한 것 자체가 조조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자오위핑 교수는 “조조의 잘못이 있다면, 그때까지 너무 순조롭게 성공해서 주변의 리스크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조가 결정적으로 방심했던 사례를 들었다.
손권의 장수인 황개가 매를 맞은 뒤 앙심을 품은 것처럼 위장하고 조조에게 거짓 투항한 때였다.
황개는 투항한 뒤 동남풍이 불 때를 기다렸다가 군량 보급선으로 위장한 배를 타고 조조의 수군에 접근해 불을 질렀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조조군의 배를 모조리 불태웠다.

“조조는 그 전의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훌륭한 장수를 많이 얻었습니다.
적벽대전에서도 훌륭한 장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현대의 기업들도 이렇게 성공에 도취하다가는 위험을 겪을 수 있습니다.
노키아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실패한 또 다른 이유로 혼자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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