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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오늘의 묵상(부활 제6주일, 청소년 주일))

뚜르(Tours) 2014. 5. 25. 00:36

 

    오늘의 묵상(부활 제6주일, 청소년 주일) 한국 교회는 해마다 5월의 마지막 주일을 '청소년 주일'로 지낸다. 청소년들 이 우정과 정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며 자라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그들과 함께하며,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교회의 다짐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5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제정하였는데,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5월의 마지막 주일을 '세계 젊은 이의 날'로 지내 오다가 1993년부터 '청소년 주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말씀의 초대 필리포스가 사마리아 고을에서 표징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한다. 이는 그곳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사마리아로 파견된 베드로와 요한은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한다(제1독서). 우리 는 시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 자신의 죄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에 겪게 되는 모욕과 고난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할 계기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진리의 영을 보호자로 보내시어 제자들과 함 께 머물게 하실 것이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 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도 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 8,5-8.14-17) 제2독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 시오.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 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 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 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 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 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베드 3,15-18<또는 4,13-16>)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 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 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 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 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15-21<또는 17,1-11ㄴ>) 오늘의 묵상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계명의 중요성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주일을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날이라는 사회 적 통념에 젖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일을 '지키는' 것이 기쁨이라 기보다는 무겁고 성가신 짐으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또한 왜 하필 주일마다 반 드시 성당에 가야 하는지 짜증스러워하며 의문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과 속내 사이의 괴리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먼저 우리가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 나는 설령 머리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주일의 신학'이 우리의 삶과 갖는 연결 고 리가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일요일이나 안식일이 아니라 그리스교적 '주일'의 의미는 사실 부활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활의 신비에 눈을 뜰 때만이 주일의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반포하신 교서「주님의 날」은 우리가 부 활 신앙을 통해서만 주일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교서는 교회가 처음부터 부활 주일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모 든 주일을 경축하며 '부활의 날'로 이해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19항 참조). 주일에는 사실 구약의 안식일 신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업 적을 찬미하고 '신전 휴식'의 의미를 알려 주는 안식일의 신학은 오늘날에도 인 간의 존엄을 위한 결정적인 기준이 됩니다. 그럼에도 주일은 근본적으로 부활을 체험하는시간입니다. 주일의 중심이 파 스카 제사인 미사이기 때문입니다. 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부활의 날인 주 일은 과거 사건의 기억일 뿐 아니라, 당신 백성 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생생한 현존에 대한 경축입니다"(31항). "교회는 주일마다 마지막 '주님의 날', 곧 끝이 없는 최후의 주일을 향하여 나아갑니다"(37항). 우리는 주일의 미사를 통하여 새로운 삶의 힘을 받습니다. 주일을 통하여 평 일이 축복을 받듯이, 주일을 충실히 지낼 때 우리의 일상은 부활의 빛으로 물들 어 갑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생명을 바쳐 내려 주신 선물인 주일의 은총을 게 으름으로 말미암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 오늘의 기도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를 저희 죄 때문에 죽음에 넘기시고, 영원할 삶으로 부활하게 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진리의 성령으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어,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모든 사람에게 부활의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5. 25. Martinus
          대영광송 /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