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해질 무렵에 그녀는 남편과 다툰 후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마당으로 나왔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스치자 소름이 돋을 만큼 한기가 느껴졌다.
그 때 남편이 드라이기를 들고 나오며 말했다. "그만 화 풀고 이리와!" 남편은 못 들은 척하는 그녀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고는 머리를 말려주었다.
정원 가득 핀 꽃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와 다툰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남편은 이해심과 포용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그녀를 달래주곤 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이런 남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후, 남편 말했다. "언젠가는 당신 혼자 이 자리에 앉아서 오늘 이 순간을 회상하는 날이 오겠지..."
남편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 있었다. 뜻밖의 말에 당황한 그녀는 남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당신은요?" 남편은 드라이기의 작동을 멈추고 그녀를 안심시키듯 싱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그녀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침묵 속에서 드라이기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남편은 한참 만에 대답했다. "글쎄... 아마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지 않을까?"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남편 없이 혼자 남겨질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어째서 나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그토록 쉽게 생채기를 내는 것일까? 남편은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매번 나를 용서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그녀는 앉은 채로 몸을 돌려 남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행동에 놀랐지만, 이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남편을 좀 더 힘껏 껴안으며 다짐했다. 세상의 단 한 사람, 소중한 남편의 마음을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것이다.
- 반 고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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